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0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2 조회수44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대림 제1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9-37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사흘 동안이나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일곱 개의 빵과 적은 물고기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여주신 기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일곱 개의 빵으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오병이어의 재현이라 할 수 있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빵을 늘린 오늘 기적은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신 모습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일곱 개의 빵으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여준 기적에 대하여도 묵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회 구성원이 되는데 있으며 종교생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건전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이 먼저이고 교회 구성원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이를 착각하고 있으므로 우리 그리스도교 일부 교회는 우리 사회로 부터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 묵상의 편의상 우리 교회를 병원에 비유하고자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환자들을 치유하신 것은 의사의 모습이며 복음을 선포하신 오늘 현장은 야외에 개설한 열린 병원입니다. 이렇듯 우리 교회도 우리의 영혼을 치유해 주는 열린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늘 병원은 영혼을 치유 받고 싶으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그런 조건이 있는 병원이 아니었습니다. 또 예수님께 치유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인이 되어 사회에 복귀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몸이 아프면 자유롭게 병원을 찾아가듯이 그런 모습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교회는 이미 이런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그들은 지금 우리처럼 주일이면 의무적으로 미사를 드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각자의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으며 국가 정책도 사회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1년 동안 한 번도 교회에 나가지 않은 사람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그들 모습이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런 모습을 예수님은 더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나 조직은 생명체이므로 조직의 관점에서는 조직 논리가 우선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에 있어서는 구성원이 추구하는 진리적 관점과 충돌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이 부분에 대한 묵상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는 말이 있으며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은 배고픈 설움이라 하였습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빵이 해결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빵을 해결하지 못하면 나머지 문제는 차후 문제이므로 최소한의 빵이 해결되고 난 다음에 생각할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절대빈곤의 상태에서는 벗어났으므로 이제는 다른 가치관을 생각해야 하지만 아직도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대 간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또 이와 반대로 우리 그리스도교 일부에서는 신자들의 빈곤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을, 지시를 따르라고 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경우가 개신교의 십일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성당신축문제에 봉착하면 신자들의 입장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민중들의 배고픔에 대하여 결코 간과하신 분이 아님을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그들을 측은하게 여기시어 일곱 개의 빵으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이런 기적을 예수님만이 일으킬 수 있고 우리는 일으킬 수 없다면 오늘 기적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곱 개의 빵으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빵이 일곱 광주리를 가득 채운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를 묵상하면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므로 하느님께 기도하면 예수님의 청을 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면 참 편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기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초등학교 5, 6학년만 되어도 이런 얘기는 통하지 않고 있으므로 성경을 공부한 사람치고 빵을 늘린 오늘 기적에 대하여 묵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빵의 기적에 대하여 저희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친절하게도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하여 다시 설명한 말씀이 있으므로 이를 옮겨보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가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  그리고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이 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가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 내가 빵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님을 어찌하여 이해하지 못하느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마태 16,9-12)하신 말씀으로 오늘 기적이 어떤 뜻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빵을 배불리 먹여준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배불리 먹여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아무리 많이 나눠줘도 결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결실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육신의 치유를 영적 치유로 묵상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육신의 양식인 빵도 영적 양식인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묵상에서는 실제로 빵을 배불리 먹여주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으로 묵상하려고 합니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이 말씀은 너희가 가진 것을 전부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식량을 전부 한 곳에 모와서 가족 인원수로 공평하게 분배하면 온 국민이 배불리 먹고도 많은 양이 남습니다. 정부 비축미가 적정 재고량을 초과하여 정부에서는 쌀 소비를 위해 별별 묘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정답을 외면하고 있으므로 헛고생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민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북 지원으로 재고량을 줄어야함에도, 북한 동포들이 기아에서 허덕이고 있음에도 고집만 피우고 있습니다.

지구상에는 기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음에도 특정 국가에서는 잉여농산물을 처분하지 못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예수님은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하시며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방법 말고 기아선상에서 고통 받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다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이처럼 성경 말씀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므로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반성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오실 날'은 더욱 더 멀게만 느껴지고 있음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병든 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치유해 주셨으며
배고픈 사람들도 외면하지 않고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어느 누구나 사회 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이 되도록
병든 영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느 때나 조건 없이 치유해 주는 열린 교회가 되고
배고픔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자들도 외면하지 않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또한 이런 우리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