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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만심과 겸손/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19 조회수612 추천수4 반대(0) 신고




 

*자만심과 겸손 *
 
내가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는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2고린 12,7). 
 
 

오만함 보다는 겸손되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아시절부터 자신에게 몰두하게 됩니다.

비록 유아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 시기에 우리는 이러한 특성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안되’라고 했을 때 울었습니다.

만약 다른 아이가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 쥐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지시를 하면 그것을 무시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행동한 것들을 떠 올리면서 입가에 웃음을 짓곤합니다.

어린 아이는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인지를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들을 해도 이해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성인이 돼서도

이러한 자기 몰두의 성향이 어떻게 계속되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갈수록 이러한 특성은 줄어들지만, 여전히 우리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행동했던 것과는 다른 식으로 드러나는데

성인 시기의 자기 몰두는 자신의 입장을 유지하려는 자만심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에 계속해서 무감각과 냉담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에 의해서 감염된 건강하지 않은  예들을 볼 수있습니다.

 

자만심은 거만함이나 자부심이상의 뜻을 지닙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비생산적인 감정이나 행위의 핵심입니다.

특별하게, 이것은 화의 문제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러한 자만심의 예를 든다면,

첫 번째, 사람들이 공손하게 대하지 않을 때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대합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존중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좌우됩니다.

세번째, 의견을 제시할 때,

만약 다른 사람이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네 번째, 강한 성격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만심은 우리의 영적인 병입니다.

자만심이 인격에 얼마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 그것이 선천적인 죄성과

복잡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만심은 영적인 병인데 이것은 죄로 인해 생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성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적합한 지식을 통해 하느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유혹을 물리치면서

자유롭게 살수 있는 지침을 아담에게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명을 무시함으로서,

아담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아담에게 자극한 내면의 힘이 자만심입니다.

사탄은 아담에게 “나는 완벽한 정신을 가졌다.”라고 생각하는

자기 몰두의 유형을 발전시키도록 충동질을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담은 실제로 다음과 같이 추론했습니다.

왜 내가 세상에게 나의 틀에 맞추도록 명령하면 않되는가?

 

일단 자기에게 몰두하는 사고에 압도당함으로서,

자신의 인격에 영원히 예속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사고를 통해 자기 몰두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계속적으로 다음 세대로 대물림하게 되었습니다.

성서는 이것을 “아담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언급합니다.

오늘 날에도, 이것은 초기 유아 시절과 노년시기에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 할 수 없습니다.

 

이 타고난 죄성은 모든 화의 부적당한 형태를 동반합니다.

소리를 치거나, 비웃거나, 비판하거나, 속으로 욕을 하면서 뒤로 빼면서,

우리는 이러한 사고들을 키웁니다.

왜 사람들은 내가 말한데로 될 수가 없는가?

비록 우리가  감정들을 통해서 감사하려고 하면서도

만약 중요한 일들이 우리가 선호하는 것들에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이렇게 마음먹은 것들은 갑작스럽게 꺾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바오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고백한 원인이 됩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않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로마 7,15).

 

어떤 심리 요법도 우리에게서 자만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뇨병이나 떨어진 시력과 같은 문제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생기는

결과들을 최소화하는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우리는 지상에서 사는 한 괴로움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만심보다는 겸손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만심은 우리의 죄의 성향을 띤 영적인 상태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은 더 건강한 영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반복해서, 신약성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도록 하라고 권고합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들로 인한 자기 몰두를 제거 할 때,

진정한 평화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채워집니다.

평화는 우리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서 옵니다.

 

 자신을 버리는 것은 약하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반면에,

이것은 실제로 평상시와는 다른 힘을 준비시킵니다.

자만심에 차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데로 하기보다,

자기를 버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활동을 통해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건강한 방향으로 이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봉헌이 실패보다는 더 성공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계속적으로 봉헌하게 하는 덕목이 바로 겸손입니다.

자만심과 반대되는 이것은 자기 몰두를 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모든 기분을 맞추도록

의무가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강요하기에는

능력에 한계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장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처럼 행동한다면 상담을 받아야만 하는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능력의 궁극적인 모델입니니다.

성서는 겸손이 개인의 인격의 초석이라고 지적합니다.

예수님은 힘으로 밀어 붙일수 있었지만

계속적으로 하느님의 봉헌된 대리자로 사셨습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자기 몰두의 감정처럼,

자만심의 밑바닥에는 자신의 욕구들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채우려는 욕구들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소모적이며 충동적인 부분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괴로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관해 지나치게 걱정을 할 때,

우리는 욕구가 무시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관계를 성공적으로 맺는 데 있어서 중요한 성서상의 권고는

자신 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들에 민감하고 그들이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겸손은 한계를 받아 들입니다.

적극성을 잘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계들을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우리는 단순한 욕구들을 전달하는 것으로부터

깊은 신뢰심을 일으키는 데에까지 모든 것을 포함해서,

개인적인 한계를 정해야만 합니다.

두 번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차이점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욕구들과 신념들을 전달하면서 인색하게 행동하지 않고

위압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을 요구합니다.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은 이러한 한계들 안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싸움을 하게 됩니다.

들은 아무도 그들에 대해 반대할 수 없다는 가정으로

그들의 욕구들과 신념들을 전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강요하고 있거나 쉽게 기분이 상합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 안에서

독특한 차이점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아담의 첫 번째 자만심에 찬 행동으로 인해 하느님과 같이 되려고

금단의 열내를 먹은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각자 안에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느님과 같은 능력을 가지기를 원하는 똑같은 열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이상적으로 되는 지를 알고 있고,

이것이 우리가 한계를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왕과 여왕이 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흉내를 내려고 할 때 분명히 실패하고

이것은 좌절감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참으로 놀랄만한 생각을 하거나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설득력 있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온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하느님과 같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선호하는 것과 생각들을 밀어 붙일 때,

우리는 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비유를 든다면, 만약 하루만에 교향곡 전체를 작곡하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당신이 느끼는 긴장감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 대부분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 과제는 우리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에 기분 나쁘게 실패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생깁니다.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한계들을 기꺼이 인식하려고 노력하며 온전히 확고해 질 때

우리는 세상이 우리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에 맞출 수 있거나 맞춰야 한다는

허황된 꿈을 버릴 수 있습니다.

확고함이라는 기초위에 섰을 때, 우리는 고통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입니다.

 

 만약 당신이 오직 의무로서만 겸손을 실행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감정을 억압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은 진정한 겸손이 아닙니다.

당신은 율법주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율법주의는 자만심의 미묘한 형태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어떤 감정들을 거짓으로 조정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겸손은 책무나 의무가 아닙니다.

이것은 선택입니다.

그것을 선택으로서 인정할 때, 우선 거칠게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서

겸손을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리를 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공격성을 띨수 있습니다.

아무도 이러한 선택권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선택을 엄밀히 조사할수록,

상식은 건강하지 않은 화보다는

겸손이 우선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더 건강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기 몰두를 제거함으로서,

우리는 다른 감정들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화를 이루는 데 더 우선권을 두고 있습니다.

 

억압하기보다 불쾌한 감정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배우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만약 학대를 받은 개인적은 역사를 가졌거나

아니면 가치를 저하시키는 데 익숙해 있다면,

우리는 아마 억압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억압하지 않고 겸손을 성장시키는 것은 계속적인 자기 반성을 요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친절하게 행동할 때 나는 그것을 진실로 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다루어야하는 이야기하지 않은 욕구들이 있는가?

내가 용서를 구할 때 나는 나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평생에 걸쳐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억제된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은 다시 부각될 것입니다.

당신의 겸손에 관한 투신은 반복되는 매일의 삶을 통해 이루어 져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2고린 12,10).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수련문종원베드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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