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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7주일 - 주님의 은총[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0 조회수447 추천수12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늦은 저녁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꽃동네에 가보면 입구의 큰 돌에 뭐라고 새겨놓았어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그 표현 가지고는 약해요.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만도 주님의 은총이지요.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하늘을 날던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비행기바퀴에 맞아 죽었어요.

그 사람이 아침에 나올 때,  ‘내가 바퀴에 맞아죽을 거라고~ ’

생각이나 했겠어요?

 

 

이 작은 땅덩어리에도 하루에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500명이 넘는대요.

그 말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장담할 사람 몇 사람이나 되겠어요?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죽고 싶어서 죽겠어요?

 

 

얻어먹을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총이요,

두 발로 오늘 성당에 올 수 있는 것만도 은총이요,

두 손가락으로도 묵주를 굴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총이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만도 은총이지요.

 

 

은총을 느끼고 감사하는 곳에는 하느님의 역사가 있지만

불평불만이 있는 곳에는 악령의 역사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감사하십니까?

말로 만요? 얼굴은 안 그런데요.

 

 

순례자들, 이 더운 여름에 비록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모님이 불러주셔서 이곳에 왔으니 감사해야 되지요.

 

 

그제는 하루에 일본에 있는 팀이 두 번이나 왔다 갔어요.

그 먼 일본에서 여기를 왜 찾아왔겠어요?

그 사람들 자기 발로 온 게 아닙니다.

 

일본 땅에 매괴성모님의 영성을 알리기 위해서 성모님께서 일본 신자들을

불러들였듯이 오늘 여러분이 온 것, 여러분 발로 온 것이 아닙니다.

‘휴가철이니 거기 가서 미사나 하고 가자!’

하신 분들 역시 초대받아 오신 겁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 인생, 나의 하루하루의

삶을 뒤돌아보면 감사 안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에 부르심을 받고 왔는데도 그저 머릿속은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서 헤어나지 못하고 살지요.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여기 농아 형제자매들이 옆에 있고, 봉사자의 도움으로 수화로 미사 하는 것 보시지요?

저분들의 꿈은 김신부님 목소리 귀로 한 번 들어보는 거예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 시냇물 소리 ......그것 한 번 들어보는 게 꿈이예요.

 

 

우리는 늘 축복 속에 살다보니 축복을 잊어버려요.

당연히 눈만 뜨면 보이는 거고, 들리는 거라고~

우리 입으로 ‘주님의 기도’ 할 수 있는 것도 은총이예요.

오늘 주님께서 ‘주님의 기도’ 가르쳐 주셨잖아요.

 

 

풍을 맞은 어느 할아버지 영성체 해 주러 갔는데

봉성체 하고나서 주님의 기도를 하니까

‘어버~~어~어~’

종이에다 뭐라고 썼는지 아세요?

그동안 내 입으로 주님의 기도한 것에 대해서 감사한 적이 없대요.

지금은 ‘주님의 기도’ 할 때 마다 눈물이 난대요.

비록 두 발은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똑똑한 발음으로

‘주님의 기도’ 한 번 할 수 있을까!

그전에는 주님의 기도가 그렇게 아름다운 기도인 줄 몰랐대요.

 

 

세상에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도!

가장 하느님스럽고, 가장 인간스러운 기도!

찬미, 감사, 청원....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기도중의 기도!

많은 성인들이 한 구절 한 구절 외울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기도!

성인들의 한평생 묵상거리가 되었던 기도!

그러나 너무 자주 하기에 형식이 되어버려 생명을 잃어버린 기도!

녹음기 틀어놓듯이 입에서만 되뇌어지는 기도!

너무 자주 하기에 기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기도!

이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 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반드시 예수님의 제자 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제자들이 ‘주님, 기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했을 때

제자들에게 특별히 가르쳐 준 기도이기에 제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무늬만 신자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기록에만 남아있는 천주교신자는 절대로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교만해서는 할 수 없는 기도요.

무릎을 꿇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언젠가 평화방송에서 제가 이 ‘주님의 기도’ 를 가지고

강의를 한 달 동안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주님의 기도는 미사 중에 15분~ 20분 동안에 강론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 줄거리만이라도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의 기도 앞부분은 하느님에 관한 것, 찬미와 감사와 영광이 나옵니다.

뒷부분에는 우리의 요구와 청원의 기도가 나옵니다.

 

 

모든 기도는 순서가 있습니다.

맨 첫 자리에는 하느님에 찬미와 흠숭을 드림으로써 그분에게 최상의 위치를 내어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알려드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기도의 순서입니다.

하느님이 정당하게 첫 자리에 위치를 잡으실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정리되고, 우리의 청원의 기도는 질서가 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거꾸로 ‘먼저 주시오, 그러면 찬미하겠소!’

이것을 기복이라고 합니다.

무당한테 비는 것과 장소만 바뀔 뿐이지~ 개념은 똑같습니다.

 

모든 기도의 첫 번째 자리에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찬미가 들어가야 합니다.

 

뒷부분 청원의 기도에는 세 가지의 테마가 나옵니다.

‘오늘’ 이라고 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우리’ 라고 하는 것이 두 번째이고

‘양식’ 이 세 번째입니다.

 

 

양식을 달라고 그랬습니다.

육적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명의 유지자이신 하느님께 향하는 기도이지요.

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솔직히 원하는 기도입니다.

 

‘양식’ 이라고 하는 것은 내 육체를 돌보아 달라! 는 그 뜻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육신이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굶주린 사람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배고픔을 채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경시한 적이 없습니다.

 

 

‘구원’ 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 즉 육체와 마음, 영혼에 대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오늘’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기원은 ‘매일의 양식만을 청하라!’ 는 뜻이겠지요.

‘그 날을 위한 양식’ 만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한주일 동안의 양식을 주시고~~’ 이렇게 안 나옵니다.

딱 부러지게 ‘오늘 우리에게~'

이것은 욕심 부리지 말고 살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의 16장 1절에서 21절에 나오는 이야기

광야에서 하느님이 만나를 내려주셨을 때 조건이 뭐냐?

하루 먹기에 필요한 양만을 모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욕심이 뻗쳐서 잔뜩 모아서

항아리 속에 담아두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다 썩어버렸다!

 

 

염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앞날에 대한 걱정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날아다니는 새도 지켜주시는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만나를 주셨듯이

우리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데도

짠물 먹으면 갈증을 느끼듯이 그저 모으기만 합니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저 모으기만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오늘이라고 하는 의미는 중요합니다.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가 아니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고 가르칩니다.

 

지금 세계의 문제는 식량문제입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넉넉히 있지만 공유하고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도 일초에 5000명의 사람이 죽어갑니다.

그 5000명 중 50%가 아이들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

라는 뜻이 됩니다.

 

 

두 번째 청한 것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

 

이 청원은 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누구든지 본인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죄인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대부분 강도나 술주정꾼이나 살인자나 간음한자, 거짓말 한 자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그런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성실하고, 남 못지않게 존경받으며, 재판 받은 일 한 적 없고

감옥에 들어갈 일도 없으며 신문에 더러운 소문 낸 적이 없다!

나는 죄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죄의 개념은

‘죄란 마땅히 되어져야 할 것이 못 되는 것이 죄’ 라고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것이 죄’ 입니다.

 

 

풀이하면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남편이 못 되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아내로 못 사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며느리 노릇을 못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사제로 못 사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마땅히 이루어야 될 수녀로 못 살아가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사제가 된 이상 성인사제가 되려고 죽은 힘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남편의 위치, 아버지의 위치에 올랐다면 그 집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신앙을 가르치려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마땅히 만들어져야 할 내 모습을 만들지 못했을 때

이것이 바로 성서에서 말하는 보편적 의미의 죄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가능성을 모두 실현한 사람이 여기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인간의 용서와 하느님의 용서는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는 그보다 수십 배의 큰 죄를 지으면서

하느님께 용서받으려고 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인간의 용서와 하느님의 용서는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사람을 얼마나 용서하느냐~

그 비율에 따라서 주님도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 이겁니다.

 

 

어떤 가정에서 매일 아침기도를 하고 늘 주님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 가장이 주님의 기도를 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내가 쫓아가서 왜 기도하다가 나가십니까?

"여보, 나는 회사직원과 너무 심하게 다투었고, 지금도 그 미움때문에

내 양심상 주님의 기도를 드릴 자격이 없소!"

 

 

누구나 그의 마음속에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있는 한

주님의 기도를 죽을 때까지 올바르게 드릴 수가 없는 겁니다.

 

 

세 번째,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에 함정을 파고, 덫을 놓아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마귀의 간교한 미래의 유혹으로부터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옛날 교리에는 삼구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세 가지의 적은 세속과 육신과 마귀라고 했습니다.

이 삼구의 유혹으로부터 구해주실 것을 간구하며 성령께 도움을 청하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체를 영하기 전에 주님의 기도를 할 것이요.

하루에 적어도 네 다섯 번 이상은 주님의 기도를 할 겁니다.

주님의 기도만이 아니라 화살기도도 바칠 것이요, 많은 기도를 바칩니다.

 

 

기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앞자리에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찬미가 들어가야 되고

뒷자리에는 청원의 기도가 이루어지는데

청원의 기도 세 가지

일용할 양식의 뜻이 무엇이고, 용서의 뜻이 무엇이고,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 힘으로는 죽었다 깨어도 안 되기에 성령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라는 겁니다.

 

 

사람을 만나러 어느 모임에 가기 전에, 식당 문을 열기 전에, 속으로 화살기도 하십시오.

오늘 이 모임에서 입으로 죄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성령님, 내 입을 축복해 주시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마다 축복의 말만 나가게 해주시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험담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말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십시오.

사람이 모인 장소에 갈 때마다, 회사에 들어갈 때마다, 반모임, 레지오 갈 때 마다

살아있는 기도를 바치고, 주님의 기도를 하면 분명히 들어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천주교신자인척~ 하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무늬만 천주교신자는 못 알아듣습니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시고 우루과이에 있는 작은 성당의 벽에 적혀있는

‘주님의 기도’ 에 대한 묵상을 낭독하면서 끝내겠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대한 묵상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일에만 너는 늘 빠져있지 않느냐!

 

 

‘우리’ 라고도 하지마라!

너는 늘 너 혼자만 생각하고 살아가지 않느냐!

 

 

‘아버지’ 라고도 부르지도 말아라!

너는 한 번도 그 아버지의 아들딸로 살아간 적이 없지 않느냐!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라고도 하지 말아라!

너는 늘 네 이름을 빛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살지 않았느냐!

 

 

‘아버지 나라가 오시며’ 라고도 하지 말아라

너는 물질만능의 나라를 늘 원하지 않았느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고도 하지 말아라.

너는 늘 너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지 않았느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고도 하지 말아라!

너는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고 욕심 부리며 살지 않았느냐!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를 용서하소서!’

라고도 하지 말아라.

너는 늘 누군가에게 아직도 앙심을 품고 살고 있지 않느냐!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라고도 하지 말아라!

너는 틈만 나면 죄지을 기회를 찾아다니지 않았느냐!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도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살지 않느냐!

 

 

‘아멘!’ 이라고도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친 적이 없으면서도

무슨 ‘아멘!’ 을 하고 사느냐!

 

 

주님의 기도를 진정으로 드릴 때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2010. 07. 25  연중 제17주일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늦봄,늦저녁에...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 사명.....外.....12곡모음>음악 김웅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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