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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젯밤에 천주교 신앙 통계를 밤새 봤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24 조회수464 추천수1 반대(0) 신고

 

어젯밤에 체험글 하나 올린 후에 우연히 굿뉴스 하단에 자료가 있어서 보다가 상세한 자료가 천주교 중앙협의회 홈페이지에 있다고 해서 잠시 보려고 들어갔다가 그만 자료가 너무 많아서 밤을 새우며 보게 됐습니다. 보면서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몸담고 있는 종교이고 또 내용이 천주교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측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심히 봤습니다. 최종적으로 그냥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보면서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 참 많았습니다. 이 한숨은 안타까움의 한숨입니다. 남이야 어떤 생각을 하든 나도 잘못하고 신앙의 길을 잘 가지도 못한데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보긴 봤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아주 꼼꼼하게 큰맘 먹고 조사를 한 것 같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나름 뭔가 심각함을 느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아마 그런 부분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제 본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오늘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교회의 외적인 영향도 생각해야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하느님을 믿고 갈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 며칠 전에는 영국에서 일어난 어떤 자료를 보고 충격을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언급을 할 수는 없지만 한평생 하느님을 믿었지만 마지막에 그가 한 행동은 그 행동 하나로 평생 신앙을 한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분이 생각했을 땐 나약한 인간이라 그랬는지는 모르 지만 제가 객관적으로 봤을 땐 이해가 되기도 됩니다. 여기서 제가 그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일반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만 언급하겠습니다. 처음엔 이런 자료를 접하고서 조금은 충격이 갔지만 오늘 어제 통계 자료를 보고서 조금 생각을 달리 하게 됐습니다. 이 세상 누구가 됐든 교황님이든 추기경님이든 신부님이든 수도자이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소위 신분을 떠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머리로는 이성적으로는 하느님을 믿기는 믿지만 확신을 못해서가 아니라 죽음 앞에서는 새로운 세계로 가고 또 그 세계를 경험 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서 두려운 게 아니라 전혀 모르는 세계이기 때문에 두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통계 자료와 관련해서 가진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열 시간을 타이핑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표현하고 싶은 건 많지만 다는 말씀드릴 수 없고 정말 이것만은 표현하고 싶다는 게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제 생각이기 때문에 분명 잘못된 판단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만약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그냥 마치 우리나라 공무원 조직처럼 철밥통 같이 그냥 지금까지 그래 왔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그럭저럭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탁상공론식 사고를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천주교인 우리 교회의 미래는 불투명할 것 같습니다. 이건 비단 우리 천주교만 당면한 문제가 아닙니다. 타 종교도 지금 코로나 이후 신도들의 신앙 실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고 하는 말을 가까운 개신교 친구로부터 들었습니다. 그중에는 목사도 있습니다. 솔직히 목사이기 이전에 인간적으로 친구와 친구로서 이야기했을 때 이젠 자기 교회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자기 세대에서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먼 훗날에 과연 교회가 존립하게 될지 그런 걱정도 할 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언급하는 것은 제가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어느 유명한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습니다만 그분은 대한민국 가톨릭 신자라면 다 알 수 있는 분인데 그 신부님의 말씀에서 그분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씀으로 말씀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정확하게 어떤 사실을 냉철하게 판단하시고 하시는 말씀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딱 그 부분만 생각한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목자 분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개종 후 11년 조금 넘게 천주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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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입니다. 뭐라고 했든 우선 자신의 영혼 구원이 제일 우선입니다. 남은 다 구원 받는데 자신은 구원과 거리가 멀다면 그건 우낀 현상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신앙생활의 가장 구심점은 자기의 영혼 구원이 우선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을 봐야 할 것입니다. 이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신앙도 건사하지도 못한다면  남의 신앙은 더더군다나 거들떠볼 겨를이 없다는 뜻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속되게 표현해서 자신의 신앙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다른 데 신경을 쓴다는 게 우스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서 설령 교회 내부에 원래부터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인해서 파생되는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 문제로 인해서 신앙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완벽이라는 게 없습니다. 

 

비근한 예로 아무리 완벽하게 입법기관이 법을 제정해도 다수가 사는 환경에서는 분명 법의 사각지대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각지대는 처음에는 잘 발견되지 않습니다. 법이 제정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법의 허술한 점을 미끼로 해서 편법이 저질러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각지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이 비단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도 사람으로 이루워졌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점을 감안해서 차차 여러 경로를 통해서 개선되기를 바래야지 뭔가 혁신을 바란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될 것입니다. 

 

원래 기계문명과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정신문명은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건 인류문화 역사가 증명합니다. 지금의 시대도 그렇다고 해도 저도 제 신앙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워낙 간사한 존재라 그렇습니다. 예전에 올리베따노 수도원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수사 신부님이 그렇다고 하는 게 아니라 수도자의 길은 마지막 관 뚜껑 닫을 때까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신앙을 함부로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걸 장담한다면 그것도 어쩌면 크다란 교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살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하며 이 길을 변함없이 가려고 하는 모습이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최종 결론입니다. 지금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잘 가시는 분들도 분명 많을 겁니다. 단순히 이 끈을 놓지 않고 간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을 하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어쩌면 자기 만족이 될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 만족을 채우는 게 아니라 자기를 버리고 자기의 자리에 하느님을 모시는 게 올바른 신앙인의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이 길을 가는 게 하느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두서없이 떠오르는 느낌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해봤습니다. 한 30분 정도 타이핑 했는데 정제된 생각이 아니라서 미비한 생각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점 감안하시고 한번 이런 점도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공유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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