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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 정서적 어려움의 치료제/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7 조회수465 추천수6 반대(0) 신고


 
 

 

* 사랑, 정서적 어려움의 치료제 *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에페 4,21.24)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을 때 우리에게 많은 중요한 결과들이 생기는데,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투신하게 됩니다.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며 자신을 성장시킬 때,

정서적인 어려움들은 개선되고 느낌들은 올바른 방법으로 작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니는 느낌들은 올바른 행위와 연결될 때 최상의 작용을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투신 할 때,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우리가 느끼느냐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로 바뀝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침과 모범으로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느꼈건 간에,

사랑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도록 작용합니다.

이런 모습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주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제자들을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하라고 제자들에게 권고하셨습니다.

 

 친교는 또한 진실하고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도록 돕습니다.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환경 안에서, 사람들은 정서적인 문제들을 갖게됩니다.

인간은 철저한 이기주의로 형성된 상황에서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질투와 적개심은 말할 것도 없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것을 대면할 때,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반응합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우리 몫의 독소를 함께 퍼뜨리는 것입니다.

 

 나쁜 관계들은 정서의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근원이 됩니다.

성서는 이것을 요약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삼키고 하면 피차 멸망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갈라 5,13-15).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상호 관계를 맺는 기술을 배워

사용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사랑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우리를 맺어 주는 것은 서로 봉사하려는 결심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들의 삶을 나누면서 투신합니다.

애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서로 칭찬합니다.

비판보다는 격려가 서로간의 대화의 주류가 됩니다.

만약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공격했다면,

그들은 용서를 청하고 공격받은 그룹들은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하는 삶을 통해 긍정적이고 지지하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크리스천의 환경에 의해서 창조된 역동성은 건강한 정서를 증진시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관대하게 관계를 맺을 때,

느낌들로 인해 생긴 문제들은 줄어들고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합니다.

만약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서 맺는 관계들의 기본적인 원리에 정통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특히 정서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들을 통해

서로 관계하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7가지의 이러한 원리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 하나하나가 신약 성서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의 사목자들은 이러한 지침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본질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을 충족시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첫 번째,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십시오.

 베드로사도는 우리에게 “충심으로 열렬히 서로 사랑하십시오”

(1베드 1,22)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십시오.”

(1데살 5,11)라고 가르쳤습니다.

산업사회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나누고 격려하는 기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회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따듯하게 손을 흔들고, 등을 두들기며, 적절할 때 포옹을 함으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때때로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계속적으로 격려해야 하고 우리 각자가 혼자말을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는데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누구나가 이런 분위기에 젖어 들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혹평을 긍정적으로 기운을 북돋는 것으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모든 부정적인 것, 비판적인 것, 경쟁적인 것

그리고 불평하는 것을 피하십시오.

 여러 성서 구절들이 전반적으로 이것에 대해 가르칩니다.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마태 7,1).

그리고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에페 4,29).

비록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장난하는 말을 할때도,

부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힙니다.

비판, 경쟁, 그리고 불평하는 것은 보통은 우리가 자신의 욕구들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자기 멋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들은 다른 사람들 안에서 나쁜 반응을 일으킬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끊어야 하고 긍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 번째, 우리는 우리의 정서적인 반응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 있어라.”(요한 3,21)라고 하는 성서의 권고를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느낌들은 행위와 관계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수치스럽게 느끼는 반응들이나 명백히 잘못된 행위를 만들어내는 행위에 대해

나눔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밝은 곳으로 내어 놓을 때 자라지 못합니다.

 

 

 네 번째,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에 대해 회개하십시오.

이것은 빛 안에 있으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이 원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기초합니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 와 예물을 드려라”

(마태 5,23-24). 죄의 목록은 깁니다. 예를 들어, 자기 연민, 변덕, 차가운 분노,

움츠러듦, 수줍음, 자신에 관한 나쁜 감정, 성미가 까다로움 등등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내면적으로 경험하는 반응에 대해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어느 누가 그것들에 관해서 알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반응들은 내면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파괴적인 충격을 일으켜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흔들어 놓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날카로운 말과 냉냉한 태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상처를 주겠습니까?

우리의 내면의 정서적인 상황들은 나쁜 말을 하는 것과 똑같이

해로움을 주면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변덕스럽거나 과민하다면, 모든 사람은 알아차립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침묵이나 차가운 태도는 그 모든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 느낌에 영향을 줌으로서 어떤 사람을 조절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킴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조정하려는 것을 멈추려고 결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이기적인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형태의 행위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딸이 어머니에게 부모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 몇 마일을 여행하기 보다는

그녀와 자신의 남편이 올해는 집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를 지낼 거라는 계획을 알립니다.

긴장이 감도는 침묵 후에, 어머니는 답했습니다.

“너를 이해하마. 너의 아버지와 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여하튼 크리스마스를 잘 보낼 것이다.

비록 그것이 너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같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TV나 어떤 것을 하면되지.”

이 간접적인 대화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처리해야 할 정서적인 문제를 갖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짐을 더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이런 종류의 교묘한 수법은 순전히 현대적 수법이라는 것에 의구심이 들지만,

명확하게 성서 텍스트가 이러한 원리를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친절에 대한 간곡한 권고와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묘사

곧,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1고린 13,5)는 말씀에 적용됩니다.


여섯 번째, 우리는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다른 사람들을 훈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고 증오심을 키워서는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골로 3,16).

바오로 사도는 올바른 것을 아는 사람들이

죄에 떨어지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충고하기를 원했습니다.

형제 자매의 단순한 충고의 말들이 의심과 분노를 여과시키며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건강한 정서를 촉진합니다.


 일곱 번째, 마지막 원리는 우리가 화를 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형태를 갖는 화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정서적인 문제들을 일으키고

관계를 파괴하면서 큰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이유로 화를 낼 때, 자기 멋대로 하지 않으면서,

화를 올바르게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화를 다스려야 합니다.

분개와 과민은 화의 유형으로 일반적으로

서로가 감정적으로 “맹렬히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자체로 그것들은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문제를 명쾌하게 지적합니다.

“모든 독설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1-32).

 

 이 일곱가지 원리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모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론, 더 강한 그리스천으로서

우정을 형성하기 위해 취해야 할 더 많은 조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정서적인 어려움들로부터 사람들이 해방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들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바로 신약성서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자신의 “육”과 정서적인 반응들이 좋은 행위를 방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적용하면서 어려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 원리들을 통해 두 배로 선을 이룰 수 있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에페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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