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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4 사순 제4주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23 조회수403 추천수1 반대(0) 신고

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2,1.12-22
악인들은 1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

예수가 이미 유다에서 활동한 것을 전제한 설명이다. 따라서 7장은 예수의 갈릴래아 활동을 보도한 6장보다는 예루살렘 활동을 보도한 5장에 문맥상 순조롭게 연결한다. “유다인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다는 언급은 5.18을 상기시킨다. “죽이려고 했다란 말은 원문에 따르면 죽일 방도를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일부 고대 사본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대신 돌아다닐 권한이 없으셨다로 되어 있다. 예수가 아버지의 위임에 따라 잠시 유다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삼가야 했다는 뜻으로서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란 말에 잘 연결된다. 따라서 일부 고대 사본의 내용이 원전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2

초막절을 유다인들의 죽제라고 언급함으로써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우선 거리를 둔다. 초막절은 해방절이나 오순절과 함께 유다인 순례 대축제 가운데 하나로서 티쉬리 15일부터 21일까지 1주간 거행되었다. 이 축제의 명칭은 축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초막에서 일주일 동안 지낸 데서 유래한다. 8일에 마감하는 대축제를 거행한다. 원래 초막절은 포도나 올리브의 과일 추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대축제였다. 그러나 나중에 종말 구원의 대망과 연결되었고,나뭇잎으로 만든 움막, 초막은 종말론적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10

문맥상 8절과 모순되어 보이는데,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라는 설명으로써 달리 언급한 것이다. 특히 남몰래는 원문에서 4절의 숨어서와 같은 말이다. 문맥상 남몰래라고 의역했을 뿐이다. 따라서 남몰래 올라갔다는 드러나지 않게 함께 예수는 자기 형제들의 요구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 올라가지 않겠습니다는 다만 예수의 형제들의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 그들의 세속적 의도,곧 세상의 명성이나 권력을 얻으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강조된 셈이다.

 

26

13절 참조. 유다 지도자들이 죽이려로 표현되어 있으나 유다 최고의회 의원들을 가리킨다. 일부 사본에는 대제관들또는 원로들로 되어 있다.

원문에는 지도자들로 표현되어 있으나, 유다 최고의회 의원들을 가리킨다. 일부 사본에는 대제관들또는 원로들로 되어 있다.

 

예수의 메시아성이 토의 주제로 언급된다. 이 주제는 7장에서 반복된다.

 

27

예수의 신원은 이미 알려져 그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의 신원이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메시아일 수 없다는 그들의 생각이다. 예수는 그들의 메시아관에 어긋나므로 메시아가 아니라는 논리다.

 

28

예수의 자기계시 말씀에 주의를 요하는 표현으로서 선언하다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외형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은 예수의 참된 신원과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 자신은 파견되었고 따라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의 정체를 참으로 알 수 있다는 있다.

예수를 보내신 분의 신적 실재 또는 참된 실존을 뜻하며, 곧 하느님을 가리킨다. 예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참으로 파견되었다는 사실이 이 구절로써 명시된다.

 

29

예수는 참으로 실존하시는 분, 곧 하느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분을 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예수의 자기계시적인 말이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왔고, 그분은 나를 파견하셨다는 말로써 예수는 자기 자신과 하느님과의 상호지속적 결손관계도 시사한다. 이런 결속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일치 관계로서 요한복음에서 자주 언급된다. 일부 사본에는 나는 그분으로부터 왔고대신 나는 그분과 함께 있었고로 되어 잇다.

 

30

그들은 예수의 자기계시를 어느 정도 이해했으나 예수를 믿지 않고 오히려 신성모독으로 몰려 했음을 저자는 말하고자 한다. 예수에 대한 불신이 강조된다.

 

그분의 시간은 성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를 가리킨다. 따라서 성부께서 허락하시는 그 시간이 예수에게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는 계시자로서 아직 활동을 계속해야 하는 시간에 있고 하느님이 예수와 함께하고 계심을 저자는 설명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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