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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44) 완제품은 내일 줄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1 조회수50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4년1월20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ㅡ사무엘상16,1-13;마르코2,23-28ㅡ

 

     (44) 완제품은 내일 줄게

                        이순의

                     


ㅡ산다는 것ㅡ

저녁 밥상에 놓을게 없다. 찌개도 끓여 놓을게 없고, 달리 먹을 반찬이 없다. 달랑 배추김치와 멸치볶음 그리고 구운 김만 있다. 대충 그대로 먹으려고 하니 자식새끼가 타박이다. 라면 사다가 밥을 말아 먹겠다고.

 

이 세 가지라도 모든 영양소가 다 들어 있으니 라면에 비하겠느냐고 윽박질렀다. 하루 종일 음식 준비를 했는데 저녁에 먹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다듬고 씻고 준비하느라고 하루가 갔다. 완제품은 내일 나온다. 모래가 설이니까 오늘은 준비하느라고 하루가 고단했다.

 

졸리고, 허리 아프고, 지치고, 손가락은 퉁퉁 붓고, 집안은 너저분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준비만 하다가 하루가 갔다. 어제 삶아 놓은 나물들을 냉수에 헹구어 놓고, 도토리묵 쑤어서 그릇그릇이 담아서 즐비하게 내어 놓고, 산적거리 양념하고, 야채 다듬고, 지짐이용 고기를 쫀득할 때까지 치대어 놓고....... 우와! 정말 끝이 없이 일을 했는데 한 가지도 완제품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가? 종일 일을 하면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가? 왜 민족이 대이동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 해 보았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다. 나 여기에 있고, 너 거기에 있고, 사노라고 바빠서 살았어도 살아있는 표시를 할 수 없고, 죽었어도 죽었을 표시를 못하고 살고만 있으니 서로  만나자. 만나서 산자도 확인하고 죽은 자도 확인하자.


그래서 다음 명절이 되어 또 산자와 죽은 자를 표시 할 때까지 우리 살아 있다고 의지하는 마음을 갖자. 모든 것은 살아 있는 자의 몫이며 흔적이다. 나도 살아 있으니 주어진 몫을 하며 나 아직 여기서 이런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산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너무 피곤하다. 오랜 맏이의 자리를 경험 했으므로 일이 서툴거나 더디지도 않다. 그냥 쉬지 않고 하다 보면 끝이고, 그 끝이 명절이 끝나는 날이다. 지금은 칩거 중이니 마련을 해서 바리바리 싸 짝꿍과 아들 편에 보냄으로 나 여기 아직 있다고 가족에게도 조상님께도 고함을 대신한다.

 

이 정성 드렸으니 제발 올해는 조상님들의 은덕과 보살핌으로 좋은 벼락만 허락하시라고 바라고 또 바라지만 조상님의 은덕보다 아버지 하느님의 지휘봉이 더 힘이 세셔서 가문의 흥망성쇠가 주님 맘대로 꾸려진 지난 세월이다. 명절이면 종가 맏이라는 자리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며느리들이 잠을 참아가며 지내는 정성일 것이다. 이 모두가 살아있기에 할 수 있는 흔적이다. 맏자식의 자리에서 칩거가 어데 칩거이겠는가?! 몸만 어쩔 수 없이 칩거를 시키고 있는 게지! 마음은 맏자식의 자리를 떠나 본적도 떠날 수도 없는데 그게 무슨 칩거인가?!

 

그래도 한두 해 해 본 경험이 아니라서 눈꺼풀 풀어진 어미의 억지를 순종해 주는 것은 자식이다.

"내일 맛있는 완제품 만들어서 할머니 집에 가져갈 거 남기고 너 다 줄게.”

자식에게 양해를 구했다. 라면 말고 있는 김치에 밥을 먹자고!


모든 것이 나 살아 있음에 너 살아 있음에 가능한 존재의 흔적이다. 그 흔적을 행할 수 있음에 삶이 보배로운 것이고 성스러운 것이다.

산다는 것이 다 그런 거지!

 

ㅡ"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르코2,27-2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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