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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크게 편안한 고장' 태안에서 이 무슨.../태안 기름유출 피해 현장에 가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12 조회수446 추천수4 반대(0) 신고
                 '크게 편안한 고장' 태안에서 이 무슨... 
                                       태안 기름유출 피해 현장에 가다 



 

태안반도는 국내 유일의 '국립해안공원'이다. 천혜의 자연 보고(寶庫)다. 풍부한 수산자원을 유지시켜 주는 청정해역과 반도를 굽이굽이 오밀조밀 싸고 도는 리아스식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들은 신의 각별하고도 아기자기한 손길, 따사로운 숨결을 느끼게 한다.

태안의 명산이며 진산인 백화산 정상에 올라 북으로는 가로림만을, 남으로는 안면도와 천수만을, 그리고 서쪽의 육지 사이로 들어와 있는 호수들과 육지 끝의 바다를 볼 때마다 거듭거듭 감탄하며 조물주께 감사하는 마음이곤 했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웠다. 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있어 백화산이 존재하고, 반도 한복판에 백화산이 있어 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존재한다는 조금은 모호한 생각도 하곤 했다.

맑은 날 점점이 떠 있는 섬들 너머 먼 수평선 위에서 어른거리는 대형 선박들을 간혹 볼 때도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는 않았다. 묘한 이질감 같은 것을 더러 가슴에 안긴 했어도, 그것들 역시 자연의 너그러운 품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뾰족한 반감을 갖지는 않았다.

정말 노상 안온하고도 태평한 마음이었다. 백화산에서 자연을 즐기고 태안반도의 풍광에 취하며 '태안'이라는 지명의 의미를 되새겨본 때도 있었다. 태안의 한자 이름은 '泰安'이다. '크게 편안한 고장'이라는 뜻이다. 무릇 지명이란 그곳의 기후나 자연 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역사적 사연이나 대표적 풍물과 관련 있는 지명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연 조건이나 특색을 반영한다. 
   

▲ 깨끗하고 아름답던 만리포 해변에서 이런 괴물을 보게 될 줄이야...  
ⓒ <충청투데이> 김대환 기자  

'泰安'이라는 지명은 일차적으로 기후 조건과 자연 조건을 내포한다. 고려 중기 충렬왕 때 생긴 이름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즉흥적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태안은 천재지변이 거의 없었고, 지금도 없는 고장이다.

자연재해가 없는 대신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에 시달린 역사적 경험들이 있다. 왜구들에 의한 '인재(人災)'는 여러 번 겪었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천재지변이 없고 살기 좋은 곳이므로, 그 오랜 생활 경험이 태안이라는 이름을 갖게 했다.

그렇게 자연재해가 없는 자연 조건 속에서, 그리고 조선 초기 이후로는 왜구에 의한 인재도 겪지 않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태안이라는 지명의 의미를 반추하며 자랑스러워하기만 했다.

자연재해 없어 '泰安'이라 불리는 곳이 이토록 처참하게 될 줄이야...

이른바 '경제개발·산업개발'이라는 명제가 최고의 가치 지표로 자리잡는 시절을 살아오면서 천혜의 수산자원 보고이던 천수만이 육지로 변하고, 가로림만 어귀에 대단위 석유공업단지가 조성되어 개발 이면의 어두운 상실감을 안게 되고 급격한 환경 변화를 실감하면서도 우리는 태안이 여전히 태안으로 존재할 줄 알았다. 크게 편안한 곳이라는 뜻의 태안이 자연재해가 아닌 문명재해로 처참하게 유린될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태안 앞 바다에 나타나 정박 중이던 대형 유조선은 순식간에 괴물의 형상으로 돌변했다. 크레인선을 끌고 가던 예인선의 선장과 선원들은 무전기며 휴대폰 따위 문명의 이기들을 잘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의 효용가치를 완전히 망실해버렸다.

대형 유조선은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엔진 시동을 거는 것만으로도 많은 연료가 소비되는 것을 너무 아까워한 탓인지 대산항만청의 이동 요청을 무시했다고 한다(아직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예인선은 뒤늦게 유조선을 발견하고 급작스럽게 방향을 트니, 끌려가던 크레인선이 급작스런 방향 전환을 거부한 탓인지 연결 줄이 끊어지면서 크레인선의 모서리가 대형 유조선의 외겹으로 된 탱크 벽을 치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도 분명한 '인재(人災)'다. 오감을 가진 사람들의 둔감과 무책임과 태만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재난을 불렀다.        

너무도 분명한 人災…거대한 재난 앞에서 기막힌 통분에 눈물만 삼켜

10일 오후에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변과 소원면 만리포 해변을 가보았다. 장기화될 것이 분명한 해변의 기름 수거작업 자원봉사에 '태안예총'도 참여하기 위해 미리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한 마디로 처참했다. 원유로 검게 뒤덮인 바닷물과 원유를 수거하여 담아놓은 수많은 커다란 용기들, 그리고 진동하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비탄과 한숨 속에서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자연재해가 전혀 없었던 고장, 크게 편안한 곳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태안 역시 문명재앙·환경재해 앞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임을 이미 눈치챘으면서도 왜 그렇게 태평한 마음이었던가!

'유조선 원유 대량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태, 그 문명재해가 천혜의 국립해안공원을 철저히 유린하는 참상의 현장을 보며 기막힌 통분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엄청난 재앙이다. 대규모의 생태계 손상과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의 경제적 손실, 생활 피해를 현재로서는 정확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태안군민 모두가 깊은 상심에 젖어 있다. 무려 1만 6천 톤이나 바다로 유출된 원유를 수거하고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태안군은 한 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다.

12일 오후 2시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갖기로 했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태안지부 창립식 및 초대지부장 취임식'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이미 널리 알린 행사라서 무기 연기 사실을 다시 알리는 일을 한참이나 해야 했다. 그 일을 겨우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즐겁지 않은 작업을 마치는 대로 다시 만리포로 달려갈 생각이다. 참으로 비참하고도 억울한 심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전에서 발행되는 <충청투데이> 12일(수요일) 치 4면 ('서해 기름유출 대재앙' 특별보도 난)에 게재된 글을 보충한 글입니다.  

신문사 사진 기자의 요청으로 만리포 해변 기름수거작업 현장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작업을 하시는 수많은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우선 천주교 태안성당 자원봉사단에 합류하여 낮에는 주로 만리포와 천리포 등의 해변에 있게 됩니다.

2007.12.12 11:4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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