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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단했던 날개를 잠시 접어두고ㅣ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0 조회수798 추천수7 반대(0) 신고

                            

 

                                     <고단했던 날개를 잠시 접어두고>


    어느 높은 명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하산 길에 와 닿은 깨달음 한 가지가 기억납니다. 높은 산이었던 만큼 계곡에 깊고 험했습니다. 어느 정도 하산하면서 조금씩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작은 개울이 형성되었습니다. 작은 물줄기는 가파른 절벽을 만나 폭포수가 되기도 하고, 깊은 골짜기를 만나 웅덩이가 되기도 합니다.


    하산 길에 여기저기 숨어있는 비경들을 만나는 것이 큰 기쁨이기도 하지만 온통 절벽이고 바위투성이인 급격한 계곡 주변은 대체로 여유가 없습니다. 혹시 피라미 새끼라도 살고 있나 한번 훑어봐도 ‘꽝’입니다.


    그러나 가끔씩 찾게 되는 금강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일단 바라만 봐도 여유롭습니다. 저절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줄기는 얼마나 거대한지요? 얼마나 완만한지요. 꾸불꾸불 대지를 훑고 지나가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풍요를 선사합니다. 수많은 초목들이 강줄기에 늘어서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낚시꾼들을 유혹합니다.


    강은 멈춰있지 않고 쉼 없이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나아가는 강줄기는 참으로 많은 역할을 하는데, 그 첫 번째가 수많은 생명들을 먹여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스승 중의 스승, 만왕의 왕,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나약하고 비천한 한 인간의 발 앞에 엎드리십니다. 엎드리는 것만 해도 과분한데, 그의 양말을 벗기십니다. 세상의 때로 얼룩진 그의 발을 손수 씻으십니다. 마무리로 입까지 맞추십니다.


    놀라운 낮아짐입니다. 있을 수 없는 자기 낮춤입니다. 경탄할만한 겸손입니다.


    그분의 겸손은 높은 곳만 선호하는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세상 사람들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 결과 자신도 지치고, 이웃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는 사람은 자신도 편하게 만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며 생명을 줍니다.


    날개는 창공으로 비상하려고만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바닥으로 착륙하기 위해서도 날개는 필요합니다.


    성삼일, 위로 위로 날아오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그래서 고단했던 날개를 잠시 접는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사흘간 고단했던 육신의 날개를 땅에 묻는 시기입니다.


    하느님은 언제 우리에게 찾아오실까요?


    낮아지고 낮아지면 반드시 찾아오실 것입니다.


    작아지고 작아지면 반드시 찾아오실 것입니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 반드시 거기 하느님께서 계실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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