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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11 조회수372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루카 15,1-3.11ㄴ-32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두 아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비로운 아버지의 참된 아들로 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작은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알지 못해 그분의 사랑을 간섭과 억압으로 여겼고 그래서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유산을 유흥과 방탕한 생활로 탕진한 후에는 자신이 아버지께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그분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다고, 아버지는 그런 자신을 절대 용서치 않으실테니 그분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복종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마음으로부터 그를 용서하셨음에도, 아니 애초에 그를 미워하신 적이 없고 그에게서 아들의 지위를 박탈하신 적이 없음에도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큰 사랑과 자비를 신뢰하지 못해 스스로를 종의 처지로 만든 겁니다.

 

그런 점은 큰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아버지 곁에 머무르며 그분의 은총과 보살핌 덕에 좋은 것을 누리고 살았음에도 그것이 얼마나 기쁘고 복된 일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자신이 아버지께 순종하며 복종한 결과 주어진 대가 정도로 여겼습니다.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굳게 믿으며 그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했기에, 그래서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잘못하면 아버지께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살았기에,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을 아버지께 청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시키시는 것들을 묵묵히 행하며 꾹 참고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거라 기대했습니다. 종이 주인이 시키는 일을 ‘그냥’ 무조건 하는 것처럼, 아버지께서 그 일을 왜 시키셨는지, 그 일이 자기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충분히 숙고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일만 했기에 아버지의 아들로 살지 못하고 소처럼 일만 하는 불행한 ‘종’의 모습으로 산 겁니다.

 

한편 아버지와 두 아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기다림’입니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자신이 아버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만 신경 쓸 뿐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하려고도, 그 마음을 헤아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왜 그렇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지를 천천히 곱씹으며 그 의미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걸 들어주시면 좋은 아버지고, 지금 당장 내 마음을 불편하고 힘들게 만들면 나쁜 아버지인겁니다. 그 판단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이루어지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할 때까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마음과 뜻을 헤아릴 때까지 모든 판단을 보류한 채 일단 귀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보듬어줍니다. 그리고 아들들이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때까지 믿어주고 충분히 기다려줍니다. 사랑은 서두르고 보챈다고 억지로 느끼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를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는 그 진심을 깨달을 때 자연스레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께서 무조건, 당연히 내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주셔야 하는건 아닙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 삶이 막막하고 답답할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밝게 웃으며 ‘어서 와라 내 아들아’하고 맞아주실 아버지가 계시다는건 크나큰 은총이자 축복입니다.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는 위로이자 힘입니다. 그러니 그런 하느님 아버지가 계심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 하느님께서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탕자’들을 기다려주시고 품어안아주시다는 것에 그들과,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이유이자 의미입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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