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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15 조회수1,329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My sheep hear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Jn.10.27)
 
 
 
당신의 화끈함이 마음에 듭니다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중에서) 
 
 
 
 어떤 여자분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발령 받은 유치원에서 겪은 일입니다.이분은 미술 시간에 특별히 수업 주제가 생각나지 않아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걸 그려보세요."
 
 
 아이들은 신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꽃를 그리기도 하고 나비를 그리기도 하고 부모님을 그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분은 이런 아이들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지요.
그런데 한 아이가 검은색 크레파스를 꽉 움켜잡고 스케치북에 있는 힘을 다해 마구 휘젓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이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가 자폐증을 앓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돼 보이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답니다.
 
"지금 뭘 그리고 있니?"
 
그러자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김 그리는데요"
 
 이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먹는 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김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검은색 크레파스를 가지고 마구 칠할 수밖에요.
 
 
 이 이야기는 남에 대해서 쉽게 판단할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상대를 진지하게 바라볼때 그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때 그 사람의 진면목을 발견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진지하게 바라보지를 못합니다. 내 생각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비추어서 그 사람을 단죄하곤 하지요.
 
 다음의 말들이 좋은 말인지.나쁜 말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할머니, 백살까지 사셔야 해요!"
 
 오래 사시라는 말. 분명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 할머니의 올해 연세가 아흔 아홉이면 어떻겠어요? 욕이 될겁니다
 
"당신은 정직한 분이군요."
 
 정직하다는 말. 분명 좋은 말이고 칭찬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야구에서 직구밖에 못 던져 좌절하는 투수라면 무능하다는 말이 되겠지요?
 
"참석해 주셔서 자리가 빛났습니다."
 
 감사의 표시로써 우리는 이 말을 잘 씁니다 그런데  그 대상의 머리가 대머리라면? 결코 좋아하지 않을겁니다
 
"남편께서 무병 장수 하시기를 빕니다."
 
 역시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그 남편에게 매일 구타를 당하고 있다면, 정말로 듣기 싫은 말일겁니다.
 
"당신의 화끈함이 마음에 듭니다!"
 
 화끈한 남자, 화끈한 여자. 요즘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이지요.따라서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화상을 입은 환자라면 어떻겠어요? 놀리는 말처럼 들리겠지요?
 
"당신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꼭  들러 주세요."
 
 간수가 석방돼 나가는 전과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겠어요? 역시 좋은 말이 아니지요?
 
 이처럼 상대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나의 말이 그 사람에게 커다란 상처가 될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입에서 나가는 마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할수 있을것입니다
 
 

오늘의 지령

 
성경에 "함부로 뱉은 말은 비수가 되지만 슬기로운 사람의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의 아픔을 낫게 하는...
 
 
 
 
제 마누라를 먼저 데려가 주세요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중에서)
 
 
 
지금은 한번쯤 뒤돌아 봐야 할 시간입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랑하고 있는지를...
 
만약 그 대답에 '너'라는 단어보다
'나'라는 단어가 더 자주 등장한다면
그대의 사랑에는 많은 수정이 필요합니다
나 혼자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은 절대 찾아오는 법이 없기에.
 
 이글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나는 누구를 위해, 또한 무엇을 위해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떠올리며 살고 있는가.
그럴때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내가 받은 것은 너무나 많은데,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것을 받고 있는데 그렇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만을 강조하면서 살아 왔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작년에 제가 있었던 성당에서 보았던 사랑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께요...
 
 매일 새벽 미사때마다 할머니와 함께 나오시는 할아버지다 계셨습니다.할머니는 치매 때문에 거의 아이 수준이었지요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성당에 나오십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서 부부애가 참으로 깊구나.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할아버지의 사랑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답니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중한 병을 앓고 계셨지요.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이렇게 기도하셨던 겁니다
 
"주님, 제발 제 마누라를 저보다 먼저 당신 곁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위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존귀하고 아름답다고들 합니다.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을 그 할아버지를 통해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체험한다는 것 그것은 분명히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부인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치매 때문에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할머니를 자신이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사랑하기에 할머니의 죽음을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 속에는 '나'라는 단어보다는 '너' 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나의 고통이 심할지라도 상대를 끝까지 지켜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아닐까 싶네요
 
 
 
오늘의 지령

 
나보다는 너를 사랑하는 내가 됩시다..그리고 너를 먼저 사랑함으로써 진정 사랑 받는 내가 되어 봅시다
  
 
 
234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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