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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외로움/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15 조회수728 추천수7 반대(0) 신고



 

*외로움  *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히브 9,15) 
 

 

태초부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족과 친구들과 가까운 유대를 이루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창세 2,1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외로움을 막기 위해서 아담에게 관계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비록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서 스스로 문제를 불러 일으켰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처음에 의도하신 것은 계속적으로 유효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혼자 있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극단적인 경험에 의하면 혼자 있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흔들어 놓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맺을 때의 느낌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느낌들이 없다면, 우리의 감정들은 항의하며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이봐, 나는 온종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나에게 관심을 줄 어떤 사람이 있지 않을까?” 외로움은 화를 북돋게 합니다.

 

 외로움은 사교성 이상의 것입니다.

이것은 소외된 감정입니다.

이것은 느낌들이나 지각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오는 공허한 느낌입니다.

외로움은 우리의 관계 안에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오는 것으로 불편한 느낌입니다.


 외로움을 느끼기 위해서, 벽을 바라보면서 어두운 방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아마 우리는 공동체가 우리가 설명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감을 들었던 때를 기억할 것입니다.

또는 상처입힌 친구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랐을 때의 불편한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관계에서 결속력이 떨어졌거나 심각한 오해로 인해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을 때,

외로움은 시작됩니다.

 

 외로움을 정확하게 알음으로서 우리는 화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화난 사람들은 관계 안에서 간격을 느끼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낍니다.

상대적으로, 그들은 간격을 만든 원인을 이해함으로서

자신들의 화에 물고를 트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외로움의 원인들로는 영적인 병, 소홀해진 관계,

그리고 전달되지 않은 욕구등입니다.

 

첫 번째 우리의 죄스러운 본성 때문입니다.


외로움은 인간의 죄스러운 본성처럼 오래된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을 통해서 좌절감을 일으키는 관계, 고통스러운 과거,

또는 미성숙한 사교성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외로움에 대해 한면만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들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짐으로서

충만한 생활을 방해받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낍니다.

 

 죄로 떨어짐으로인해

첫 번째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아담은 하느님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아내로부터 숨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의 상처입은 것을 덮기 위한 방법을 찾은 후에,

그는 핑계를 대고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 삶이 어떠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있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사랑, 기쁨, 평화

그리고 인내와 같은 경건한 특성으로 가득찼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느낌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담은 어떻게 하면 아내가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성숙한 의사소통자였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와는 아담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아담이 자신과 함께 하려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경험하는 것들은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풍요롭게 경험했던 것들 가운데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죄는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느님께 도전한 후에, 그는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속였다.” 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와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숨김없이 온전히 배우자에게 이야기 하면

그는 나를 거슬러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예전처럼 가깝지 않다.”

하느님께서 원치 않으셨던 심각한 단절이

그들의 삶안에 영원히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과의 연대감에 금이 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느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때 이래로, 낙원에서 부부가 느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은

똑같은 감정적인 부산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소외의 느낌들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외로움과 죄의 본성을 연결함으로서,

우리는 이 감정이 예외없이

모든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게 그것을 경험하지만

아무도 여기서 완전히 제외 될 수는 없습니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외로움의 어떤 형태를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감정적인(신체적인 부분도)고통을 피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거부되거나 무시되거나 가치가 저하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은 발생할 수 있고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실을 받아들일 때 고통을 줄일 수는 없지만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힘을 덜 갖게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는 관계를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한편으로는

우리의 죄스러운 본성 때문에 생긴거라고 설명될 수 있는 반면에,

이것은 또다른 면으로는 거부된 관계로부터 올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과 활동으로 너무 바빠서 더 중요한 삶의 요소들을 간과 합니다.

예를들면, 동정심이나 믿음 또는 서로 짐을 지어주는 것들을 소홀히 합니다.

 

지나치게 바쁜 일정만이 성숙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만족스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게을리 합니다.

 

 지상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묻는 젊은 율법학자와 마주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마음, 영혼,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웃을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첫번째 목적은 첫 번째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다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간결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주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것을 삶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들이 우선권을 갖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

출세를 하는 것, 계획을 수행하는 것 등입니다.

 

세 번째,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욕구들을 말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화를 자극하는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개인적인 욕구들에 관해서

덜 관심을 가질 때 일어납니다.

언제나 우리는 성질이 납니다.

“왜 사람들은 진짜 내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주의깊게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 주기를 기대합니다.

외로움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친구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잘 읽지를 못하기 때문에 계속되는 좌절감만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중요한 관계에서 원하지 않는 벽을 쌓는 식으로

의사전달을 할 때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자신이 그런 식으로 몰아갑니다.

항상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주도권을 갖기를 바라면서

관계를 만들려고 할때 생기며 이런 피곤함으로 벽은 쌓여집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불평합니다.

“이것은 정말 불공정하다. 나는 항상 손을 내미는 사람이야.”

 

 그러나 만약 우리가 관계를 맺을 때 항상 공정한 룰들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극히 불공정하게 처신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다른식으로 기대함으로서,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국 감정은 엉망이 됩니다.

이렇다할 이유도 없이 공정함을 추구하기 보다,

우리는 화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파괴하는 장벽을 뛰어넘는데 주도권을 잡음으로서

우리의 화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소외 그리고 외로움에 빠지기 보다,

우리는 사고와 활동들을 조절함으로서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화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마음을 터놓고 자신을 알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 욕구들을 즉각적으로 알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불가항력적인 것들을 받아 들임으로서,

자신의 느낌들과 상호 목적들에 대해 대화를 제안하면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다른 사람들이 진실로 알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속으로 불평을 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여러분에게 더 좋은 것,

바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히브 6,10-11)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수련문종원베드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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