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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참 단식" - 2.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9 조회수447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19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참 단식"
 
 


참 중요한 큰 일이 먹는 일,
‘먹을 식(食)’자 ‘일 사(事)’ 자의 식사(食事)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 할 놈 없다’ 는  모두가
먹는 일의 절실함을 표현한 속담들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이 으뜸의 근본이 되는 업종이라는 말입니다.

먹어야 삽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육신을 지닌 인간에게 너무나 자명한 진리입니다.
 
근본적인 욕망이 식욕, 성욕, 수욕(睡慾), 물욕입니다.
 
욕망 자체는 좋고 나쁨도 없습니다.
 
무절제한 식욕의 탐식이,
무절제한 성욕의 탐애가,
무절제한 잠이,
무절제한 물욕의 탐욕이 문제입니다.
 
에바그리우스 사막교부의 8가지 악덕 중 첫째가 탐식이듯이
모든 문제는 무절제한 식욕의 탐식에서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병도 무절제한 식사에서 기인합니다.
 
식욕을 절제할 수 있어야 이어 성욕과 물욕의 절제도 쉬워집니다.
 
참 중요한 현실적인 일이 먹는 일입니다.
 
정치도 결국 국민을 먹여야 하는 경제에 닿고,
수도원을 떠받치는 것 역시 먹는 일의 경제(돈)와 영성(하느님)입니다.
 
이게 몸을 지닌 인간의 정직한 현실입니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도 닦기 힘들지만,
반대로 너무 춥고 배고프면 기도도 수도생활도 힘듭니다.
 
추위를 따뜻이 녹이기 위해 에너지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식량이 필수입니다.
 
에너지와 식량은, 인류보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을 봐도 ‘식(食)’과 ‘성(性;sex)'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
무수히 늘어나는 음식점과 유흥업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삶이 고달프고 영적으로 메마를수록
본능적인 욕구의 해소를 위한
식(食)과 성(性)의 업종(業種)은 더욱 번성할 것입니다.
 
수도원의 실정을 봐도
먹는 일이 얼마나 큰 지
성당 규모에 버금가는 식당과 주방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당에서 주님과 형제들과 친교를 나누듯
식당에서도 똑같은 친교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이나 수도원에서 나가는 쓰레기도
대부분 먹는 것과 관계된 것들입니다.
 
수도원의 음식물 쓰레기는 모두 닭들의 먹이가 되지만
세상의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얼마나 많은지요.
 
수도원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역시
대부분 먹을 것을 포장했던 것들입니다.
 
참으로 중요하고도 큰 일이 먹는 일입니다.
 
결국 사는 것은 먹는 일, 노동의 일이 대부분처럼 느껴집니다.
 
먹고 살기위해 일하는 사람들 같습니다.
이래서 단식이 절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땅의 현실에서 먹고 일하는 것이 전부라면
짐승과 다름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의 하느님을 보고
옆으로 눈을 돌려 이웃을 보라고 단식입니다.
 
단지 내 자신의 건강을 위한 닫혀있는 단식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열려있는 단식입니다.
 
하여 단식이 하느님께 열려있는 기도가 되고,
이웃에 열려있는 자선이 될 때
건강한 단식이요 영육의 건강입니다.
 
단식을 통한 육신의 배고픔과 목마름은
저절로 하느님을 배고파함과 목말라함으로 연결되고,
단식을 통한 자신의 가난과 한계에 대한 깨달음은
저절로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을 향한 연민의 사랑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단식이 정말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단식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이를 분명히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 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이웃에 활짝 열린 사랑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참된 단식이라 하십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느님은 어김없이 축복으로 응답하신다는
예언자 이사야의 다음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
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말씀해 주시리라.”

이웃 사랑으로 활짝 열린 단식일 때
그 활짝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 하느님의 보답입니다.

그러니 단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분별의 지혜를 요하는 단식입니다.
 
우선 시급한 단식의 대상은
배불리 먹어 영양 과잉의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예수님의 제자들보다는
배부른 종교인들인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
그리고 부자들이 해야 할 것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혼인잔치와 같은 일상의 때는
함께 먹고 마시는 친교의 나눔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먹는 재미가 없으면
예수님의, 또 오늘의 가난한 이들 무슨 재미로 살 수 있겠는지요.
 
그러나 당신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빼앗길 날이 오면
함께 슬퍼하며 단식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은총의 사순시기,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절식이나 단식을 할 때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 육신의 아침식사에 앞서
우선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양식으로
우리의 영육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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