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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3 조회수446 추천수5 반대(0) 신고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마태 19,1-12)

-유광수 신부-

 

어제 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라디오 프로를 듣게 되었다. 그 프로에 초대된 어느 중년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감사패"에 얽힌 이야기였다. 남편은 자주 직장 관계로 한 달에 약 20여 일은 집을 비워야 했다. 주위에서는 남편이 바람이 났다는 등 남편 관한 많은 구설수가 있었지만 부인은 남편을 믿고 딸 넷을 꾸꿋하게 교육시키면서 남편이 없는 가정을 지켜왔다. 그렇게 살아오기 어연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남편도 직장에서 정년 퇴직하여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지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간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부부의 이야기였다.

 

남편이 집에 있으면서 그 동안 자기 가 없는 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였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기를 믿고 꾸꿋하게 가정을 지켜온 아내에게 무엇을 고마움의 표현을 할까를 고민하던 끝에 아내에게 바치는 "감사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감사패의 내용에는 그 동안 가정을 지켜 와 준 것에 대해 그리고 자식들을 잘 키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글을 적었다. 남편은 '감사패"를 만들어 아내의 생일 선물로 하려고 준비해두었다가 생일날에 아내의 나이만큼의 장미꽃다발과 함께 이 "감사패"를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남편이 아내에게 바치는 "애정의 표현"인가 하는 노래의 가사를 써서 작곡을 의뢰하여 노래를 만들었고 본인이 직접 노래를 불러 테이프를 만들어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딸들이 다 커서 그들도 시집갔지만 그날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딸과 함께 아내에게 "감사패" 수여식을 하였다는 것이다.
"지나간 긴 세월들을 홀로 가정을 지키며 자식을 키우느냐고 고생한 당신에게.."라는 글을 큰 딸이 읽어내려가다가 목이 매여 울먹이는 소리로 읽었고 그 내용을 듣고 있던 아내도 울어서 그날 생일날에 때아닌 눈물 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었다. 나는 요즈음 자주 눈물을 흘린다.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가슴 아픈 장면을 보면 자주 눈물이 나온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가슴 아파서 울고 안쓰러워서 운다. 강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나약한 존재인가 보다. 아니 부드러운 남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철이 들었기 때문일까?  


요즈음 같은 세상에 남편이 아내에게 "감사패"를 만들어 생일 선물로 바쳤다니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거기에다 노래까지 직접 작사하여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불러 테이프까지 만들었다는 것은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다. 아! 부부란 참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정말 저런 것이 부부인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런 모습으로 늙어가야 하는데..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 저렇게 사랑해야 하는데. 요즈음 우리는 이런 부부의 아름다움을 보기가 쉽지 않다. 부부의 아름다움은 한쪽만이 아니라 함께 일구워 나가는 것인데 그런 노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하는 요즈음 이 중년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빛을 주신 것은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인간이 해야될 일이 있다. 이것을 착각해서는 불행해진다. 즉 하느님이 하실 일을 인간이 하려고 한다든가 또는 인간이 해야될 일을 인간이 하지 않고 하느님께만 맡겨둔다든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하느님이 하시게 놔두고 인간이 해야할 일은 인간이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삶의 원칙이다. 만일 그것을 뒤바꾸어 놓을 때에는 혼란스럽고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럼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삶의 원칙은 무엇인가?

 

첫째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라는 것이다.
즉 남자를 만들든 여자로 만들든 그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남자로 태어났든 여자로 태어났든 그것은 하느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또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원망할 필요가 없다. 또 우리 부부에게 아들을 주시든 딸을 주시든 그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지 여자가 하는 일도 아니요, 남자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 남자 선호사상이니 뭐니해서 딸이 푸대접을 받게 되고 많은 태아가 살인을 당하게 된다. 또 아들을 못 낳는다고 여자들이 시집식구들이나 남편한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는가? 삶의 원칙을 모르는 데에서 오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다.


두 번째,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는 원칙이다. 많은 경우 결혼한 이들이 부모를 떠나지 않는다.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더 이상 부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자립하라는 말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사는 시기였다면 이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지키면 부모와 자식간에는 더 할 수 없이 화목해지고 그것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이다. 그런데 부모를 떠나지 못할 때 그것은 부모에게 두고 두고 짐이 되는 것이며 가장 큰 불효이다.


세 번째,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하느님은 결혼할 때 혼인 성사를 통해서 자녀를 낳아 번성하고 잘 살으라고 축복해주셨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이 지키지 않고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한 몸이 둘로 갈라지고 그로 인해 부모와 자식간에 갈라지고 형제와 형제가 갈라지고 가정이 파탄에 이르게 된다.


네 번째,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려고 하는 꿈을 버려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스스로 성직자의 삶 또는 수도자의 삶을 떠나는 경우가 생긴다.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자기 삶의 자리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식별의 기준은 언제나 삶의 원칙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하느님의 일이면 하느님께 맡기고 인간이 해야할 일은 인간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하느님의 일을 인간이 하려고 한다든가 인간이 해야할 일을 하느님께 맡기려고 할 때 혼란이 오고 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고 그곳에서 개발하여 발전시키고 꽃을 피워야 한다.


개나리는 개나리 꽃을 피우고 진달래는 진달래 꽃을 피워야한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려고 그렇게 서쪽 새는 울었나보다."


아름다움은 인내의 결과요, 삶의 원칙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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