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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호자가 오시면'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9 조회수573 추천수5 반대(0) 신고
'보호자가 오시면'(요한 16,5-11)

  -유광수 신부-


보호자가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죄와 정의와 심판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죄와 정의와 심판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지적해주고 올바르게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죄이고 정의인지 그리고 심판인지를 알려면 보호자(성령)가 오셔야 알 수 있다.


보호자가 오시면 우리가 그 동안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죄로 드러날 것이고 정의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어떤 것이 정의인지 그리고 심판이 올바른 것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이 죄이고 정의인지 그리고 올바른 판단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내 마음 안에 오셔야만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보호자가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가?

복음을 통해서오신다. "보호자가 오시면"이라는 말은 나의 삶을 "복음의 빛으로 비추어 보면 무엇이 죄이고 정의이었는지를 심판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복음을 묵상하지 않으면 내가 죄를 짓고 있어도 죄를 지은 것인지 올바르게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을 묵상하다보면 그런 잘못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복음을 묵상하는 사람만이 자기 죄를 볼 수 있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도 복음을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자기 죄가 더욱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같은 죄인들은 죄를 짓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죄 고백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성인들은 매일 매일 통회의 눈물을 흘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고해성사를 보았던 것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몇 년 전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했던
"막가파"사건이 떠 올랐다. 막가파들을 취조하던 한 형사의 고백을 일간지 칼럼에서 읽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된다. 한 형사가 그들을 취조하던 중 설렁탕 집에 데리고 가서 설렁탕 한 그릇씩을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중 한 젊은 이가 설렁탕을 먹다가 울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울먹이던 젊은 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지금까지 그 누구한테서도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다. 형사님이 사주는 설렁탕이 자기 생애에 있어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는 것을 받아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배고플 때 그래도 자기를 위해서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는 형사님이 고마워서 운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몇 년전 그토록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고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그들의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행동을 저질렀던 젊은 이가 설렁탕 한 그릇을 사주는 형사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그 고마움에 설렁탕 앞에서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을 흘렀다면 그 젊은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폭악한 살인마가 아니었다. 설렁탕 한 그릇에 눈물을 흘렀다면 그 젊은이는 얼마나 순수하고 나약한 존재이었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누군가가 사주었을 때 그 고마움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나는 우리 사랑에 메말라 있는 이들에게 설렁탕 한 그릇의 사랑을 베푼 적이 있는가? 그를 살인마로 만든 사람은 바로 그 젊은 이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한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이고 그 책임은 그가 아니라 우리의 책임이 더 크다.

 

우리가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마태 25, 42-43)라는 말씀을 묵상하였다면, 사랑에 굶주려있는 이들을 그렇게 무관심 속에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고 말씀했던 대로 우리 자신의 죄와 의로움과 심판을 빍혀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요, 말씀이시다. 우리는 그동안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 그토록 사랑을 외쳐대면서 과연 우리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무슨 사랑을 베풀었고 어떤 하느님의 모습을 증거하였단 말인가? 하느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약속한 우리들이 무엇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는가?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이 판단하고 의롭다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심판한 것이 있는가? 정말 복음의 빛으로 나의 삶을 되돌아 본적이 있는가?

나는 소그룹 복음 묵상을 몇 그룹 지도하고 있다. 매주 복음 묵상을 나눌 때마다 울음바다가 된다. 복음을 북상하면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죄와 심판을 보게되기 때문이다.


어느 자매님이 다음과 같은 묵상을 고백하였다. 정신적으로 약간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4살 되었을 때 너무 화가 나고 속이 상해서 손으로 떼리고 그것도 안되어 빗자루가 다 망가지도록 떼렸다는 것이다. 그 때 심정같아서는 아들을 죽이도록 미워했고 죽여서도 자기 속이 풀리지 않을만큼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온 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울면서 엄마 엄마하고 울고있었는데도 그냥 떼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어느 날 피정을 갔었는데 옆 사람을 꼭 안아주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옆 사람을 안아주면서 아들 생각이 나서 한없이 울었다는 것이다.

 즉시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꼭 안아주면서 얼마나 귀한 아들이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아들은 하느님이 주신 큰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아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고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고 고백하면서 울었고 묵상 나누기하던 자매들은 그 자매의 고백을 들으면서 함께 울었다. 어쩌면 자기들의 잘못을 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기의 죄를 보게 되기 때문이리라.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피조물치고 하느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눈 앞에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히브 4, 12-13)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속 마음을 보게 해주신다.


우리는 말씀에 빛을 받지 않으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이 죄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혀"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와 의로움과 심판을 보게 된다.

 

우리가 게으름, 이기주의, 무관심, 불성실함, 미움, 판단, 탐욕 등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죄와 정의와 심판을 말씀해 주시는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죄이다.

 

자기가 잘못된 생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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