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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사랑이 계명인가?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4 조회수521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0-11)
 
 한 문장 안에 부드러움을 연상시키는 '사랑'과 딱딱함과 무서움을 연상시키는 '계명'이 같이 있는 것이 어째 이상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아마 우리들의 삶에서 '사랑'과 '계명'이 따로 놀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계명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 없다. 이슬람교 시아파 계열인 바하이(Baha'i)교의 경전에서 신(神)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계명은 내가 나의 종들에게 비춰주는 사랑의 등불이며, 나의 창조물이 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이는 시편 119장 105절의 말씀과 비슷하다. "당신의 법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하느님에 관한 말을 할 때에는 먼저 악의를 없애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악의의 원천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1요한 4:8, 4:16) 하느님의 계명은 '사랑의 행동, 사랑의 실천'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어릴 적에 부모님께서 보여주신 잊지 못할 사랑의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마다 아픔이 덜어지고 자신감이 생기고 순화(純化)되는 대단한 치유능력을 보여주셨던 기억이 날 것이다. 부모님께서 '사랑의 위력'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들이 가장 상처를 심하게 받는 것이 마음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가장 마음 아파하는 상처는 다른 사람들의 상처 받은 마음이 만들어 준 것이다. 중세의 신학자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랑은 마음의 행동'이다. 사랑은 강제적으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샘솟듯 우러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갈갈이 찢어진 우리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가장 좋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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