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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어의 마법 - 언어 분석 [비켄슈타인]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3 조회수566 추천수2 반대(0) 신고
 
철학의 서양적 어원은 "지혜에 대한 사랑" 이고, 하이데거의 해석에 의하면 "존재에 대한 응답" 이다. 그리고 한자의 '철'은 '밝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완전한 사랑은 조건이 없어야 한다. 진리를 무조건으로 사랑하는데 거기에 "실생활에서 유용하기 때문에" 라는 조건이 첨가된다면 이미 한계를 그은 사랑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에 "유용성(실용주의) 때문에" 라는 조건은 없다. 즉, 순수학문은 "유용성"과는 별개의 고유한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 실용주의적인 종교(프래그머티즘) 이런 맥락에서 비판을 받는다. 종교의 진리는 사랑이라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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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전기 =  <논리-철학논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론으로 핵심을 이루는 철학적 주제를 7가지로 제시하는데 그의 첫번째 진술은 '1. 세계는 경우(case)들의 집합이다' 로 시작되어 끝으로 '7.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로 정리한다. 이러한 주제들을 통해 그는 [언어와 세계] , [묘사와 묘사된 것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언어와 세계 사이에는 세 종류의 관계가 있는데, 언어는 세계를 대변하고 묘사하며, 그리고 서술하는 관계를 갖는다. 이 세계는 사물로 이루어졌지만 단순히 사물로서만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관계 속에 있는 사물, 즉 '경우'로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권의 책은 '너의 책'이거나 또는 '지루한 책'으로 일정한 경우를 나타낸다.
 
관계 속의 경우가 세계를 이루며 그 형식은 'a는 b와 관계된다'로 표현한다. 언어는 곧 이 세계를 이루는 경우들을 모방해서 우리에게 악보가 악곡을 전달하듯이 전달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때 언어가 경우의 그림을 그려낸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명제의 그림이론' 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문제는 언어가 해결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의 끝 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무의미한 말이며, 세계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한계는 곧 언어의 한계가 된다"
 
 
후기 =  <철학탐구>를 통해서 '새로운 철학'을 시도한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시기의 중심개념은 '언어게임' 이다. 그의 후기 이론은 자신의 초기 이론을 비판하면서 시작하여 한 단어는 항상 한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문맥 안에서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것을 끝으로 설명한다.
 
일정한 사용규칙을 가진 '언어게임' 안에서 한 단어는 의미를 갖게 된다. 말하는 것은 행위이며 동시에 마음의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하나의 삶이다. 언어는 개인과 세계를 또는 공동체를 연결시킨다. 따라서 언어의 의미는 사용규칙에 의한 것이며 이 규칙은 하나의 언어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언어 문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는 결코 개인적인 것일 수 없다.
 
예를 들면 흔히 인사할 때, '식사하셨습니까?' 또는 '어디 가십니까?'라고 하는데, 한국이라는 언어공동체에서는 당연히 인사로 이해되기 때문에 아무도 왜 이 사람은 내가 밥을 먹었는지를 궁금해하는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언어의 공동체 사람에게는 대단히 이상한 물음이 된다. 내가 밥을 먹었거나 어딜 가거나 무슨 상관인가 하고 말이다. 이러한 사용법을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문법이라 말하며, 이 문법을 이해할 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 여기에서의 꼬레템프트릭스 - 공동 구속자 간의 문제성 , (한국사람들에게는 한국어 언어사용규칙이 있는 것이다) ]
 
그에 의하면 우리는 철학(신학)의 혼란한 언어사용으로 인해 마법에 걸린 것이며, 이제 다시 언어를 바른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철학(신학)의 제 역할을 되찾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신학)은 세계(인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세계(인간)는 언어에 의해서 측량되기 때문이다. 철학(신학)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언어의 행위이다.
 
 
 
 * 위의 ( 괄호 안 )의 글은 게시자가 삽입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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