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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동체의 고마움" - 2008.4.20 부활 제5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0 조회수445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4.20 부활 제5주일
                                                      
사도6,1-7 1베드2,4-9 요한14,1-12

                                                          
 
 
 
 
 
"공동체의 고마움"
 


봄꽃들 만발했다 싶더니 벌써 신록의 계절입니다.

배 밭 가득한 만발한 꽃들,
하루가 다르게 신록 짙어져 가는 불암산,
모두가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하늘나라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가수는 노래를 통해서 말하고
시인은 시를 통해서 말하고
수도자는 기도를 통해서 말하고
사제는 강론을 통해서 말한다고 합니다.
 
결국은 삶을 통해서 말한다는 건데 참 이상적인 삶입니다.
 
불필요한 말은 거의 없을 테니
저절로 침묵과 관상이 뒤따를 것이며
공동체의 일치와 평화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깊이 묵상하던 중
떠오른 주제는 ‘공동체’였습니다.

무한 경쟁의 공동체 붕괴의 시대에 절실한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게 공동체의 중요성입니다.
 
어느 분의 교육의 목적에 대한 간략한 언급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위의 교육의 두 목적은 
그대로 공동체 생활을 위해 갖춰야 할 요소이기도 합니다.

애당초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는 인간 존재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들 대부분 부실한 공동체에서 기인합니다.
 
여행이나 방랑이 낭만적일 수 있는 것도
돌아 갈 집이, 공동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뿌리와도 같고 받쳐줄 배경과도 같은 공동체입니다.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동체 운동에 헌신해 왔고 또 지금도 헌신하고 있는지요.

공동체의 신비입니다.
공동체의 예술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겐 공동체의 신비는
곧장 교회의 신비와 하느님의 신비에 직결됩니다.
 
진정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아름다운 것은
그 중심에 계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공동체보다 더 좋은 예술작품은 없습니다.
이 시간,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인 교회공동체에 대해 살펴봅니다.
 
모든 수도공동체, 성가정공동체의 모델인 교회공동체입니다.


첫째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공동체입니다.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공동체 중심에 모시기에 가능한 공동체입니다.

하여 베네딕도 성인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하셨습니다.
 
이래야 형제들에 대한 집착이나 기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두를 주님께 믿고 맡길 때만이 공동체의 평화와 일치도 촉진됩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핵심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무엇보다 이런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하여
길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목적지인 하느님을 향할 때
개인은 물론 공동체는 진리와 생명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형제들 서로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을 뵈올 수 있으니
이미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실현입니다.
 
위의 주님의 말씀이 공동체를 통해 실현될 때
이보다 더 큰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수도원 정문을 지나
주님을 상징하는 넓게 쭉 벋은 길을 통과해
거룩한 성전, 미사 안에서 아버지를 만남으로
진리와 생명으로 충만해진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의 공동체를 끊임없이 리모델링하는 미사은총입니다.


둘째,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는 교회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조직이나 구조가 튼튼하지 않으면
아무리 이상이 좋아도 오래 못 갑니다.
 
하여 카리스마를 지닌 창립자는
자기가 떠날 때를 대비하여 규칙을 만들고 체제를 정비하며
공동체의 뼈대를 마련하는데 온 힘을 다합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에서 구체적 공동체의 현실을 배웁니다.
 
한마디로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는 공동체입니다.
모두가 다 드러나는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결코 역할의 우열을, 호오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공동체 건설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소임에 따른 역할 분담은 필수입니다.

사도들은 제자들의 공동체를 소집하여 형제들의 동의를 구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사도들은 식탁 봉사에 뽑힌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므로
주님 안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굳건히 합니다.
 
기도와 말씀 봉사만이 아니라 식탁 봉사 역시 봉사입니다.
구별은 있을 지언 정 차별은 추호도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역할에 충실 하는 것이 공동체를 돕는 것이요,
주님을 돕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살아있는 돌들로 이루어진 영적 집의 교회공동체입니다.

교회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차원이 중요합니다.
이래서 끊임없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입니다.
 
아무리 외적 건물 좋고, 외적 건강 좋아도
내적으로 영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외적 건물, 외적 건강 무용지물이 되어버립니다.
 
안에서부터 영적으로 무너지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특히 교회공동체는 더욱 그러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있는 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데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이래야 내적으로 견고한, 성장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처럼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퉁이 돌, 예수님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살아있는 돌들인
우리로 건축되는 영적 집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공동체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 중에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인 우리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적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선택된 겨레이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인 우리들입니다.
 
하나하나가 영적공동체의 고귀한 신분들입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성체성사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시고
진리와 생명으로 충만한 공동체를 만들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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