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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리 잡게 하여라!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04 조회수526 추천수14 반대(0) 신고

  

네 복음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

 

어떻게 기적은 일어나는가?

요한의 이야기에서는 기적이 일어나는 내. 외적 동기를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알듯이 보잘것 없는 것을 내놓는 것에서 기적은 일어난다.

즉 보리빵 다섯개, 물고기 두 마리뿐이지만, 그것을 주님께 내어놓을 때

그분이 많게 불려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적인 즉 양적인 기적을 만들어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적의 내적인 동기, 곧 질적인 면에서의 동기는  

'자리를 잡고 앉혀주는' 행위에 있다.

 

........................................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사람들은 그 위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야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실 그곳이 풀밭이든, 길바닥이든, 돌밭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또 서 있든, 앉아 있든, 엉거주춤 돌에 걸터 앉아 있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러나 굶주린 사람들, 허기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는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그들을 아무렇게나 다루지 않았다는 것을

풀밭에 자리잡게 하라는 말씀 하나에서 잘 엿볼 수 있다.

 

그분은 풀밭이라는 안락한 곳으로 그들을 안내하고,

편안한 자세로 자리잡게 한 후,

오십명씩, 백명씩 질서정연하게 팀을 짜서 (마르꼬, 루카),

다 '자리를 잡은'(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는 시설에 있는 친구 수녀님이 있다.

전화 할 때마다 미사, 기도, 회의, 출장 등으로 연락 두절은 다반사고

겨우 통화가 되어도 바쁘긴 마찬가지다.

어찌 지내나 궁금해서 한번씩 연락하는 것이지만,

 겨우 통화가 되면 "수녀원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는지 몰라 해봤다"고 객적은 소리를 건네본다.

 


수녀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삼시 세 때의 음식 수발은 물론, 의복 세탁을 맡는 경우도 있고,

 매일 혈압을 체크하고, 투약과 간병 등의 건강 수발에 늘 여념이 없다.

환절기나 동절기, 무더위가 극심한 하절기에는 또 긴급사태가 수시로 생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산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원래 늘 배고프시고, 늘 편찮으신 분들이니

그분들께는  적당히 하시고, 수녀님이나 건강 꼭 챙기세요.

그래야 내가 할머니 되면 챙겨줄 것 아녜요."

 

늘 아토피로 고생하는 수녀님.

겹겹이 껴입은 수도복 소매 끝까지 부스럼이 다닥다닥 보이던 것이 생각나서

안스러운 마음에 공연히 어깃장나는 말을 하고 끊는다.

 

 

가끔은 그곳을 찾아갈 때도 있다.

갈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수녀님들을 만난다.

우리 집보다 더 정갈한 반찬에, 깨끗한 시설에 놀라곤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평안하고 활기찬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 모두가 그분들의 희생의 노고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풀밭에 앉힌다는 것.

편안하게 자리를 잡게 하고 베푼다는 것.

얻어먹는 사람들이니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주는대로 받아 먹고

배만 부르면 됬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무의탁 노인들, 부모에게서도 버려진 아이들,

그런 사람들이니 아무데서나 비만 피하고 추위 더위만 피하면

그만 해도 다행이 아닌가 하는 그런 마음으로 보살피는 것이 아니다.

 

 

못먹고, 못입고, 못 배우고, 못 살아 온 그런 사람들이니

먹다 버린, 입다 버린, 쓰다 남은, 그런 것들로도

감지덕지 해야할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나눌 때, 어떤 자세,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오늘 오천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풀밭'에 <모시고> 있는 예수님의 자세에서 배운다.

그야말로 지극정성을 다해 그들을 돌보아주시지 않는가.

그러니 어찌 그 풍요로운 기적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포만감은

양적인 포만감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듯하게, 귀하게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사람을 배부르게 해줄 수 있다.

 

사실 아무리 많은 양을 가져도 마음은 더 허할 수 있고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마음을 채워주면 배부른 법이다.

 

그날 풀밭에 자리잡고 앉아 기적을 경험한 오천명은

어떤 잔치자리에서도 경험한 바 없는 영적, 육적인 포만감을 누렸다.

그날의 이야기거리는 12광주리에 담고도 남을 만큼 두고두고 회자되어 내려왔다.

 



 

 
The Holy City 거룩한 성
Jessye N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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