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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54) 1억 원으로도 할 수 없는 과외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03 조회수55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4년1월30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ㅡ사무엘하11,1-4ㄱ.5-10ㄱ.13-17;마르코4,26-34ㅡ

 

          (54) 1억 원으로도 할 수 없는 과외

                                         이순의

 

 


                                 


ㅡ섬ㅡ

시대가 돈이라는 절대가치의 계산이 가능하다면 못 얻을 것이 없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은 넘쳐나서 감당키 어렵고, 모자란 사람은 부족해서 골골골 하느라고 힘든 게 돈이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할 수 없고, 돈이 없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지휘봉이 지시하는 절대가능의 운명이다. 그런 운명에도 인간의 용기나 뜻으로는 도저히 선택 할 수도 거절 할 수도 없는 대 전환의 시기가 있다.

 

우리가족이 생면부지의 섬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녀자의 마음이야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식을 데리고 섬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남들은 학교에 입학을 하면 이농을 해서 섬마을을 떠난다는데 어떻게 된 남편인지 험난한 고행만 하며 살자고 하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우긴 것이다. 다툼도 많았지만 남편의 기를 꺾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쪽은 언제나 내 쪽이다. 그래서 이기지 못 하고 따라 나섰다. 돌아보면 주님의 뜻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요셉과 마리아의 인생 여정만큼 복잡하다. 아기예수님도 부모가 가잔 대로 따라 나섰겠지만 우리 아들도 부모를 따라서 참으로 안간데 없는 떠돌이 인생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거 없는, 짝꿍이 큰돈을 쥐어 보겠다고 수 만평의 땅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었다. 성공이었다. 잠만 자고 일어나면 그 들판에는 푸르름으로 꽉꽉 들어차고 우리는 일확천금이 보장되어서 고생을 고생이라 하지 않은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었다. 어려운 인생살이에 종착역이 보였다. 대대로 이어 온 가난을 면할 수 있어서 남편의 한이 풀어질 것이었다. 우리는 씨만 뿌렸을 뿐 그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게 결실을 이루고 흥겨움의 찬미가는 콧노래가 되어 저절로 봉헌 되었다. 갑작스런 노동으로 힘들어진 손톱이 반 토막도 남지 않은 그렇게 찌릿찌릿한 통증은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고생이었다. 곧 출하시기를 놓고 기쁨과 평화만 거둘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전국이 해가 쨍쨍 났다는데, 그 섬에만 하룻밤에 160밀리의 폭우가 쏟아졌다. 깊은 심야에 후두둑 후두둑 시작된 빗소리에는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새벽에 쏟아져 버린 폭우소리에 우리 내외는 주님을 원망하지도 못 했고, 방문을 열어보지도 못 했다. 시골집 봉창이 밝아오고 간밤의 폭우가 잦아들었지만 선뜻 방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 볼 엄두가 나지 못 했다. 둘이서 얼굴만 마주하고 앉아 목 놓아 울지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에게 하염없이 하염없이 자유를 주고 있었다. 그 넓은 섬마을의 옥토는 수장되고 말았다. 푸르름은 사라져버린 꿈이었고, 흙탕물만이 온 대지를 덮고 있으리라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거역 할 수 없는 하늘의 명령이었다. 토방에 서서 굳어져 버린 우리 부부의 오금을 펴주려고 누군가가 기척을 하고 있다. 나와 보라고, 앉아있지 말고 나와 보라고, 방문을 두드려 일으켜 세우시는 분은 공소 회장님이셨다. 저녁 내내 우리를 걱정하시다가 쓰러지기라도 했는지 살피러 오신 것이다. 첫 새벽에 마루에 서서 본 들녘은 풍요의 땅이 아니라 죽음의 땅이었다. 가난만이 계속 될 고통과 좌절의 흙탕물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 시간 이후의 시련을 또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이산의 결정을 내렸다. 자식과 나는 섬에 남고 남편은 떠났다. 단칸의 방도 없어진 서울이라는 터전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서울에 가면 남편 혼자서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면서라도 일을 할 수는 있었지만 가족이 함께 살 수는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섬마을에서 비어있는 폐가를 적당히 수리해서 살고 있었으니 쌀과 김치만 있으면 학원도 없고 과외도 없고 돈들 일이 없으므로 버틸만한 인생이라고 여긴 결정이었다. 떠났다. 자식하나 달랑 안겨주고 남편은 떠났다. 꼬박 2년을 살았다. 그건 엄청난 대가의 노력이 소실된 과외수업이었다. 산천을 놀이터 삼아 누비고 다니는 자식의 특별수업이다. 바다가 있고! 들이 있고! 산이 있고! 노을이 있고! 바람이 있고! 바위가 있고! 곤충이 있고! 지붕 속에는 박쥐가 있고! 처마 밑에는 새도 있고! 또아리 틀고 앉은 뱀도 있고! 이슬 먹은 풀도 있고! 오색의 열매도 있고! 산속의 절에서 얻어먹는 빈대떡도 있고! 바닷가의 똑딱 배에서 갓 잡아 온 회가 있고! 마을별로 소를 잡아서 나누는 광우병 걱정이 전혀 없는 싱싱한 육회가 있고! 땅을 파고 깡통을 묻어서 판자 두개를 나란히 놓은 똥간이 있고!  봄 냄새 풀풀 나는 쌉싸룸한 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고! 살갗이 홀랑 벗겨지는 이글거리는 태양이 있고! 황금을 이루는 벌판의 풍요가 있고! 검은 대륙을 하얗게 하얗게 신세계로 바꾸는 겨울요정이 있고! 계절이 있고! 자연이 있고........!

 

누구도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는데 산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그려졌고, 들에는 초록이 물결을 이루며, 바다에는 쪽빛 하늘이 퐁당 빠져서 수영을 한다. 서울에 없는 것들이 섬에는 손닿는 대로 잡을 수 있고, 눈길 가는 대로 볼 수 있고, 발이 머무는 대로 갈 수 있는 많은 것들이 교과서가 되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이 책상이고, 그것이 공부이며, 되는 대로 점수가 오른다. 봄볕 따스한 산천을 떠돌다가 식힐 땀을 거두려고 어느 나뭇가지에 벗어 걸쳐둔 조끼가 해살에 타고 비에 젖어 기다림에 지칠 때쯤, 가을 어느 날 다시 그곳을 지나는 제 주인을 만나 색 바랜 채로 아들의 몸에 걸쳐서 돌아온다. 차가운 겨울 도랑에서 꿈쩍도 하지 않던 투명한 미끌이는 아지랑이 꾸물대는 잔물결을 따라 검은 점이 꼼지락 거리기 시작 하고, 곧 올챙이가 되는가 싶더니, 어린 소년의 양동이에는 하나 가득히 발 달린 아기 개구리들이 꼬리를 흔들고, 마당에 촤아~악 뿌려 졌다. 소년도 웃고 누렁개도 검둥개도 웃느라고 온통 소란이었다.

 

봄이면 하얀 젓가락 모양의 길다란 밤꽃이 책가방의 주둥이에서 수줍게 나폴거리다가, 곧 초록이 부숭한 구슬이 되어 연하디 연한 살결을 책가방속 가득히 주워 담아와 우르르 쏟아 놓더니, 어느새 억센 가시를 손가락 두개로 조심스럽게 집어내 한 송이 두 송이 마룻바닥 가장자리에 줄을 지어 진열을 하다가, 풍경이 화려한 계절이 오면 제법 굵은 알밤들이 배가 볼록한 책가방속에서 삐죽삐죽 티를 내며 가시는 없다고 신호를 한다. 그렇게 모아놓은 밤알은 추운 겨울에 오시는 아빠에게 자랑이 된다. 푹 삶아서 까먹으며 산천을 떠돌다가 배운 공부를 어미아비에게 재잘거린다. 그 조끼를 그 골짜기에서 만나 너무너무 반가운 이야기도 이산의 상봉만큼이나 신이 나게 들려준다.

 

계절이 여덟 번째 바뀌고 다시 여름이 되어 트럭에 이삿짐을 실었을 때는, 주님께서 시켜주신 과외공부가 아니었다면 내가 엄청난 희생이라는 투자를 하며, 이런 과외공부를 시키려고 자식을 데리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작은 농가를 한 채 사서 영원한 우리가족의 과외교실을 마련하고 뭍으로 나가는 배를 탔다. 재벌이라는 부자가 1억 원짜리 과외공부를 한다 해도 2년이라는 세월동안 섬 살이 하면서 산천을 떠돌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주님의 크신 축복에 저절로 감사의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풍성히 자라고 있다. 아들의 가슴에서 잊혀 지지 않을 학습이 되어 오늘도 내일도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이 자식의 심장에서 어떤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지 모른다. 주님께서 거두실 것이 있으리라고 믿을 뿐이다.

 

ㅡ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마르코4,2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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