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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6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6 조회수757 추천수12 반대(0) 신고
 
                                 3월 26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 루카24,13-35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전혀 예기치 않았던 청천벽력 같은 일 앞에 주저앉아 울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갑자기 빠져든 깊은 수렁 속에서 한숨만 쉬던 적은 없으십니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큰 상처 앞에 크게 낙담해보신 적도 많으시겠죠.


    오늘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스승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사건’이 아직도 두 제자의 머릿속에 끔찍한 환영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렇게 태산 같은 분이셨는데, 그렇게 든든한 성채 같은 분이셨는데, 그리도 처참하게, 그리도 무력하게 돌아가시다니...


    도저히 현실을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던 마지막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어 얼굴은 침통합니다. 생기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어깨는 늘어질 대로 축 늘어졌습니다. 그렇게 두 제자는 깊은 좌절과 실의에 빠진 채 터덜터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엠마오로 길을 가던 두 제자는 목숨이 붙어있었고, 그래서 걸어가고 있었지만,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목숨이 붙어있었지만 진정으로 살아있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목숨이 붙어있지만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 내면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자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 예수님께서 조용히 다가가십니다. 왜 도망쳤냐고 꾸짖지도 않으십니다. 왜 배신 때렸냐고 질책도 하지 않으십니다.


    살아있지만 사실 죽어있는 제자들, 그리고 우리들을 측은지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우리 곁에 나란히 서십니다. 우리와 함께 길을 걸어가십니다. 차근차근히 전후좌우 상황을 설명해주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몇몇 통계를 보면 참으로 끔찍합니다.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비록 목숨은 붙어있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은 채로 멍하니 지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 가치부여를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 쓸모없는 무용지물이라고, ‘폐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낙담과 자책, 절망과 회의 속에 마지못해 억지로 하루하루 삶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슬퍼하실 일입니다.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엠마오로 길을 가던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듯이, 언젠가 반드시 예수님께서는 낙담에 빠진 우리들의 삶 가운데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함께 걸어가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나긴 터널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하는 이유입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128번/형제여 기뻐하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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