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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47) 가보고 싶어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5 조회수67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4년1월23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ㅡ사무엘상24,3-21;마르코3,13-19ㅡ

 

   (47) 가보고 싶어요.

                                    이순의

             

 

ㅡ기다림ㅡ

 

 

"나쁜 자식들!"

외출을 하고 돌아오던 아들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정초라서

서로 조심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들의 입에서 먼저 거친 소리가

사뿐히 흘러나온 것이다. 무척 조심스럽게 아들을 바라보았다. 초

사흘도 안 되어서 큰 소리가 날까봐 가정 안의 안주인인 나는 노

심초사 짝꿍과 아들의 중간역할을 잘 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

다.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아들은 주 중에 못해본

갈증을 푸느라고 열중이고, 아빠는 설 날 하루가 긴장이었던지

퍼져서 잠만 잔다. 자식에게는 정초부터 아빠 입에서 공부하란 소

리 나오면 서로 섭섭하니까 눈치껏 하라고 타이르고, 짝꿍에게는

언제라도 여유가 생기면 어머니 집을 늘려드리던가 제사를 모셔

오던가 하자고 하면서 마음을 안배 하느라고 여간 힘이든 하루를

 보냈다.

 

낮쯤 되어서 컴퓨터를 계속 할 줄 알았던 아들 녀석이 컴퓨터를

꺼버렸다.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하

루 종일 컴퓨터만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 먹을 거 좀 고루고루 싸줘 보세요."

이유는 성탄 무렵에 주일학교에서 봉사활동으로 독거노인 방문을

했었는데 그 할머니께 다녀오고 싶다는 것이다. 너무 기특해서 음

식을 싸 주면서 꼭 절을 올리고 새해 인사를 하는 법을 일러서 보

냈다. 가족들이 오셔계시면 그냥 눈치껏 드리고 민폐가 되지 않게

돌아와야 한다고 단단히 가르쳤다.

 

성탄 때 어떤 할머니 댁을 다녀와서 10일 단위로 주는 용돈을 다

쓰고 왔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필요한 물품을 사는데 썼

다는 것이다. 청소하고 말벗을 하러 간 학생들이 어른들도 아니고

무슨 돈을 써야 했을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청소를 해 드리고 보

니 쓰레기 봉지가 없는데 그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오면 청소를

해드리나마나 일거 같아서 가게에 가서 쓰레기 봉지를 한 묶음을

사다가 담아서 놓고 남은 봉지를 집에 가져오고 싶어서 갈등까지

헸다는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다음에도 쓰시라

고 쓰레기 봉지를 놓고 왔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이 그 할머니 댁을 다녀오면서 험한 소리를 입에 담고

있었다. 듣고 보니 할머니는 소년의 방문을 받으면서 기다리던 자

식들이 오지 않은 서러움을 토해내신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도 모

시고 오라 했다고 엄마도 가자는 것이다. 소년의 눈으로 본 할머

니의 기다림이 가슴이 아팠던 모양이다. 나는 갈 수 없다고 말해

주었다. 항상 가난했지만 최선이려고 했던 엄마의 봉사 활동을 보

아온 아들인지라 쉽게 이해는 하고 있었다.

 

엄마가 건강이 나빠져서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 자신을 돌

보아야 한다는 사실과, 엄마가 많은 가슴 아픈 사람들과의 인연을

정리하기 위해서 2년도 더 소비되었다는 것, 그리고 친할머니를

모시지 않으면서 봉사를 하는 것은 친할머니께서 조금이라도 젊었

을 때 하는 것이지 지금은 할머니도 늙으셔서 남의 할머니도 불쌍

하지만 친할머니가 더 우선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도 친할머니

는 그 할머니에 비하면 불쌍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들

을 위로해 주었다.

 

네가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들도 마음 같

이 못 해야 할 형편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우리가 할머니

를 모실 수 없는 좁은 집에 살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너희 할머

니를 보면서 자식들은 다 뭐 하고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지 않느냐

고 욕을 할 수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이르면서 알지 못한 사

람들에 대한 일방적인 인신공격을 자중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아

들의 흥분은 사그라질 줄을 모르고, 우린 할머니집이 아무리 좁아

도 그 좁은 방으로 다 모여들잖아요? 라고 대꾸한다. 명절에 그

할머니집이 아무리 좁고 더러워도 자식들이 왔어야 된다는 주장이

다.

 

오늘은 아들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 아들을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

었다. 명절 전에 미리 음식을 싸서 할머니 집에 다녀오라고 보냈

을 때도 그랬다.

"손자로서 할머니께 해 드릴 수 있는 위로의 말은 다 해 드렸어

요. 엄마가 하는 거만큼은 못 해도 지금은 엄마대신 한다고 생각

하고 손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동원해서 했어요." 라고.

모든 것이 내가 가르치려 해서 배워 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내 아들의 심성을 따스운 쪽으로 바로 잡고 계신 것이

다.

 

요즘은 경로사상이 결여된 세상이라서 아이들이 어른을 닮아서 마

음을 쓴다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아들은 참으로 신선한 소

년인 것은 분명하다. 그 할머니의 저녁 찬이 풍성하였기를 빈다.

반찬만이 아니라 내 아들의 마음이 반찬이 되었으리라고 믿기 때

문이다. 주님의 은총이 그 할머니와 그 가족들에게 풍성하기를 빈

다. 갑신년 정초에.......

 

ㅡ"네가 나보다 낫구나. 나는 너를 못살게 굴었는데도 너는 나에

게 이렇게 잘해 주었다. 사무엘상24,1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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