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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 흉내내기 <18회> TV는 사랑을 싣고 l 박용식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02 조회수750 추천수12 반대(0) 신고
 

TV는 사랑을 싣고


   2000년 어느 날 오후 바람 쐬러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무원 세실리아한테서 전화가 왔다. "신부님 빨리 들어오세요. 깜짝 놀랄 만한 기쁜 일이 생겼어요."


   "복권이라도 당첨된 거냐?"는 내 질문에 복권 당첨된 것보다 더 큰 사건이니 빨리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유치원 선생들과 함게 흥분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용인즉 KBS 방송국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수 '제이'가 나를 찾는 다는 것이다. 제이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연예인이었으므로 20대 처녀들이었던 사무원이나 유치원 선생들이 방송국에서 온 전화 하나로 그토록 호들갑을 떤 것이었다.


   결국 몇 분 후에 방송국 작가로부터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일단 거절을 했다. 강원도 태백에서 서울까지 너무 먼 거리이고 또 천주교 신부가 그런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것이 바람직 한지 확신도 없고 해서 내일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다. 더구나 그 프로그램에 신학생이 출연한 적은 있지만 신부는 처음이란다.


   "TV는 사랑을 싣고"는 당시 꽤 오래된 인긴 프로그램으로서 유명 연예인이나 사회 명사가 어떤 사연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스튜디오에 초대해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신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혼자 고민도 해 보다가 '사제는 필요하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달려가야 한다.' 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출연하겠다고 답변했다.


   며칠 후에 방송국 촬영팀이 나를 찾아 서울에서 내려왔고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나는 작가가 시키는 대로 성당을 떠나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이렇게 현지촬영을 끝낸 나는 그 먼 서울 스튜디오에 가서 제이를 만나는 장면을 녹화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방영이 되었다.


   제이가 누구인가? 내가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서 교포 사목을 할 때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었다. 교통사고로 제이 친구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 제이의 친구를 돌봐주면서 친구인 제이도 함께 데리고 다녔다. 영화관, 볼링장, 맥도날드, 피자헛, 쇼핑센터 그리고 스키장 등 많이도 데리고 다니며 예뻐해 주고 사랑해주었다. 물론 주일학교와 미사에는 빠짐없이 잘 나오는 애들이었다.


   난 그 후 발령을 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귀국한 지 10여년 사이에 제이가 유명한 연예인이 되어 나를 찾은 것이다. 내 나이에 연예인이나 TV 출연에 큰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성당에 나오는 주일학교 학생들, 청소년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는 대단한 관심사였고, 나를 마치 스타가 된듯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태백시 내외 어느 거리에 나가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았고 식당에 가면 반찬이 덤으로 더 나왔다. 제이에 대한 정보나 사인을 얻으려고 청소년들은 제이를 좀 만나게 해 달라고, 사인 좀 받아 달라고 나에게 백을 쓴다.


   천등산 박달재 사이에서 태어난 촌놈 중의 촌놈이 출세를 해도 많이 했다. 한양에 가서 공부하여 신부가 되었다. 80년대 당시 시골 사람들로서는 꿈도 못 꾸던 미국에 가서 5년 가까이 살았다. 80세가 넘은 부모님들을 미국으로 초대해 미국 구경을 시켜드려 동네에서 몇 년 동안 할 자랑거리를 만들어드렸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본당에서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과분한 은총이며 축복이다.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 길을 가련다. 지난 25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해 사제 생활을 해 왔지만 죽을 때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러면 제이가 돈 많이 벌어 벤츠 자동차 사준다고 했으니 벤츠 탈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야겠다.

 

    - 원주교구 횡성성당 박용식 시몬 신부 수필집 /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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