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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53)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02 조회수720 추천수15 반대(0) 신고
 

2004년1월29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ㅡ사무엘하7,18-19.24-29;마르코4,21-25ㅡ

 

          (53)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이순의

                          


ㅡ가치ㅡ

어른들이 들으면 아직 멀었다고 야단을 하시겠지만 내 짝꿍의 마음이 울적해지면 잘 하는 푸념이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면 돈 많은 사람을 서로 잡아 가겠지만, 제일 못난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면 나를 잡아 갈 거라고 탄식을 한다. 그 뜻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지만 달리 위로할 말도 부정할 말도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세상이라는 등경 위에 올려놓고자 했을 때는 세상이 요구하는 조건이 너무나 많다.

 

좋은 일자리를 권유 받고도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 줄 수 없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 것처럼 거절을 하며 자존심을 숨겨온 짝꿍의 입장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놈이라고 술도 안 먹고 주정을 한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없어서 어렵고 힘겹게 인생을 꾸려가야 하는 배우자와 평생을 동행해야 할 내 자신의 인내심은 때때로 성인의 경지를 요구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본이 무엇인가? 읽고 쓰는 것이 자유로워야 하고, 영어 알파벳에 발음기호를 붙여서 소리 나는 대로라도 혀를 굴릴 줄은 알아야 하고, 한문으로 된 숫자정도는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안 되는 사람과 산다는 것은 그 자체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도 수용해야만 함께 할 수 있다.

 

주변의 물질과 지위와 수준들을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며! 모른 체하는 나를 바라보는 짝꿍은 짝꿍대로 가슴을 쓸어내리지 못하고 취하지도 않은 술주정을 그렇게도 처량하게 토해낸다. 자식이 중학교에 가서 첫 시험을 보던 날, 시험을 보지 않고 학교를 조퇴 했다고 크게 꾸지람을 하는 아빠다. 중학교부터는 시험을 한두 시간만 본다는 것을 일생동안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을 만큼 사사로운 일 조차 모르고 살아 온 사람이, 인간이 정한 기본을 안다는 것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상식인 것이다. 그렇게 낯이 설은 사람을 짝꿍이라고 믿으며 기대어 산다는 것은 그런 그가 신기한 발견이었다. 어떻게 저런 것도 모르지?

 

오늘의 복음말씀은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라고 하신다. 우리 내외가 세상을 향해 기본이 될 수 없는 것들을 들추고 싶지는 않았지만,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그 벽은 투명하고 낮기만 했다. 비단 교회 살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우리부부의 신앙생활은 열심한 신자로 보인다. 부부가 항상 나란히 앉아서 주일을 지킬 뿐만 아니라 정성과 성실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판이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반장님의 호출이 시작된다. 주일 독서 대에 세울 독서자로 이만 한 짝이 없다는 것이다. 주일의 교중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삶의 중심인 부부를 못 알아볼 리가 없으므로 거절할 수도 없다. 그럴 때는 부득이 남편은 지방 출장 중이어야 하고 한 주간을 쉬어야 한다. 다른 미사에 가서 반원들을 뵙게 되면 할 만한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 다른 형제님과 짝이 되어 독서 낭독을 하기도 하고, 아예 독서자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방을 가지 않으면서 내 짝꿍이 근교의 다른 본당에 가서 미사참례를 한 적도 없다. 그 만큼 단순하고 순박한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안쓰러워하면서 동반의 삶을 살아가는데 세상 안에서는 그 눈높이에 솔직하지 못 했던 것이다. 그 부자연스러움이란 겪고 있는 사람의 등에 지워진 천금 같은 무게로 짓눌려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충분한 힘이 되어 줄 친척들의 든든한 빽도 소용없고, 크고도 넓은 울타리가 되어 줄 친지들의 배경도 바람막이가 되어 줄 수 없다. 그  높으신 빽도 그 좋으신 배경도 다 소용이 없다. 그냥 그랑 나랑 신이 주신 운명 앞에 순응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숨은 도둑의 간은 더 졸인다고 하듯이 자식이 자라면서 더욱 노심초사하게 된 것은 부모 된 입장이다. 학교에 간 자식이 가져온 부모의 신상카드에 참을 쓸 것인가? 거짓을 쓸 것인가?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부모로 인해 자식의 신상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차별이 따를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한 어린 아들은 참말을 써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크면서 마음이 변할 날이 오면 그 때는 거짓을 써 주기로 하고 자식의 뜻을 따랐다. 그렇게 자식은 부모의 됫박을 벗겨 주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우리 아빠를 누가 뭐라고 하면 가만 두지 않겠어. 그거 밖에 못 배운 우리 아빠가 나를 이렇게 잘 키우는데 우리아빠가 다른 아빠만큼 배웠으면 대통령을 했을 거야. 그치? 엄마!"

 

짝꿍의 등불에 덮인 됫박을 벗겨 준 것은 여편네가 아니라 어린 자식이었다. 그 때부터 우리부부는 그냥 자유다. 친척들이 좋은 자리를 권해 오면 그 곳에 만족할 이력서를 낼 수 없다고 말하면 되었고, 반장님이 독서봉사를 권해오면 짝꿍이 글 읽는 게 더듬어서 신자들께서 분심이 드니까 나 혼자 하게 해 주시라고 여쭈면 되었다. 간단한! 아주 간단한 해방이다. 무엇이 그렇게 복잡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노력해서 살려는 모습을 존중해 주기도 하고, 다독여 주기도 하며, 이해해 주기도 한다. 오히려 나는 그 자유로움으로 ’내 짝꿍의 심성은 신부님들을 닮아 더 신부님 같다’고 자랑하게 되었다. 배우고 가진 자들의 썩은 뉴스를 접하게 되는 세상에서 모두 모여와 한없이 자기를 낮추고 끝까지 겸손 할 수 있는 내 짝꿍에게 진실한 삶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진즉에 내 짝꿍의 등불을 밝혔어야 했다. 세상의 조건이 결코 전부는 아니었다고 밝게밝게 빛을 비춰주었어야 한다. 이제는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도 알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성공을 빌어 주신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민심은 천심이니까, 그 많은 기도와 바람들이 덕이 되어 그의 인생에 힘이 되어 준다. 반장님도 이제는 짝꿍더러 독서 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됫박을 덮어 두던 때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역시 나의 짝꿍이고 열심히 하는 신자이다. 나의 칩거에도 혼자서 주일 교중미사에 열심한 마음으로 다녀온다. 지방에 출장을 가면 그 본당의 주보를 꼭 속주머니에 담아서 가져다준다.

 

"우리 마누라하고 선본 날 했던 약속인께 꼭 지켰네. 내가 자네한테 해 줄 것이 주일 지켰다는 표시해 주는 거 말고 뭐가 있것는가! 인자는 우리각시 빨리 미사에 나오게 해 주시라고 기도허네. 몸이 어지간만 허면 미사에 나가봐야 안 쓰것는가. 빨리 기운을 차려야지."

 

거꾸로 된 신앙이다. 주님 보시기에 나 보다 내 짝꿍이 훨씬 이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성서도 읽지 않는다. 교리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믿음이 좋은 처자에게 장가간다고 받은 세례다. 밤에만 하는 견진교리 때문에 일을 밤에 하는 직업이라서 십여 년간 견진도 받지 못 했었다. 자식이 견진을 받을 때가 되어서 더 이상 아비의 견진을 미룰 수가 없다고 할아버지 신부님께 허락을 받았다. 밤에는 각시인 내가 성당에 가서 교리를 공부하고, 낮에는 집에서 짝꿍이 나에게 배우는 릴레이 교리교습과 개별 면접을 통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주일을 지켜주는 짝꿍을 원했던 나에게 18년 동안 주일을 지키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빛은 아주 사소한 삶에 있는 것이다. 세상이 정한 기본에 있지 않고 하느님이 정한 기본에 있는 것이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엄마에게 아빠의 신상카드를 써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직접 써서 담임선생님께 제출을 하고, 그런 아들을 두어서 행복한 부모가 된 것이다. 아빠는 못난 아빠를 만나서 미안하다고 자식에게 취하지도 못한 주정을 하지만, 자식의 눈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 우리 아빠인 것이다.

 

ㅡ"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마르코4,21-2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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