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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14일 야곱의 우물- 요한 10, 31-42 묵상/ 깨진 안경알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4 조회수478 추천수7 반대(0) 신고
깨진 안경알

그때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요한 10,31-­42)
 
 
 
 
◆성부의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유다인들은 신성모독자로 잡아들이려 한다. 여기서 성부의 관점과 정반대되는 유다 지도자들의 관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성자의 말씀과 행적은 율법의 새로운 이해,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일깨우고 있으나 바로 그 새로운 관점에 대한 언급이 신성모독이요, 예수님이 죽어야 할 이유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교포사목을 할 때 일이다. 유리문이 닫혀 있는 것을 모르고 용감하게 걸어 나가다가 그만 문에 부딪혀 오른쪽 안경알이 깨지고 말았다.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자동차 안에 있는 선글라스가 생각나 얼른 바꾸어 끼고 안경점으로 달려갔는데 안경을 수리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린단다.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끼고 신문을 보고 바느질을 하고 식사를 하고 성무일도를 바치고 기도를 하면서 칙칙하고 답답한 하루를 보냈다.
 
투명한 안경알을 통해서는 사물 본연의 색상을 보게 되지만 색안경을 통해서는 다른 색으로 보게 되므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마자 안경점으로 달려가 수리한 안경으로 바꾸어 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더없이 맑고 밝게 빛났다.
 
율법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예수님의 발언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수 없었던 그들은 고정되고 편협한 관점에서 예수님을 단죄하고 끝내 죽음으로 몰아붙였다. 진리의 여정에서 구습이 발목을 잡는다. 관점이 문제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의 신관은 더욱 중요하다. 그들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
 
잘 아는 양 밀어붙이는 이들의 행위야말로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 신약의 새로운 신관을 위해 오늘도 예수님은 수난을 겪으신다.
서효경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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