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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鄭周永 翁의 名言
작성자최익곤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4 조회수566 추천수10 반대(0) 신고


 
 
鄭周永 翁의 名言 
 
정주영은 책임자를 ‘채금자’라고 했다.

책임자에게 “당신 해보고서나 그런 소리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생전의 정주영은 경영자, 기술자들이 난관에 부딪혀

“어렵다” “못하겠다”고 하면 어김없이 “해봤어?”

라고 반문했다.



 
우리는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
,
못한다면서 너무 긴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중국과 일본에 짓눌려 상처투성이가 된

역사를 질긴 목숨처럼 이어왔다.
 

 

정주영의 “해봤어?”는 그런 역사에 대한 반란이었다.

6·25가 없었으면 세계 사람들이 이런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을 나라, 지지리도 못살고, 못 배우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 나라에서도 시골 논두렁 잡초만도

못하게 태어난 사람이

“우리 한번 해보고나 나서 안 된다고 하자”고 했다.

그것은 울부짖음이었다.





현대중공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정주영이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세계에서 제일 큰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모두 “미쳤다”고 했다.

돈도 기술도 경험도 명성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한국인들에게 큰 배, 좋은 배는

일본 같은 나라들이나 만드는 것이었다.




 
정주영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봐, 해봤어?”라고 물었다.

혼자서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 한 장,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한 장을 들고 유럽을 돌았다.

외국 사람들이 “조선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배를 사주면 그 돈으로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다.
 
1974년 6월 조선소 완공 때는 이미 20만톤이 넘는

대형 유조선 12척을 수주한 상태였다.




조선소 준공식은 “해봤어?”라고 물었던 정주영에게

하늘이 해 준 대답이었다.

그해 첫 선박 명명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와서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 ‘조선입국(造船立國)이라고 썼다.

‘우리도 배를 만들어 먹고 살고 나라를 지켜보자’

는 비원(悲願)이었다.



그로부터 33년 뒤인 지난 5월 25일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도크에서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이 진수됐다.

정주영이 처음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해군은 미군이 버리다시피 한 구축함에
페인트칠을 해서 쓰고 있었다.

천지개벽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지스함 진수식을 며칠 앞두고 현대중공업을

찾아 볼 기회가 있었다.

1987년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노사분규 취재 때문이었다.

그때 정주영은 노조원들에게 우산대로 몸을 찔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20년 전 그때 그 자리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신천지를 바라 보았다.



 
세계의 선주(船主)들이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황량할 정도로 넓었던 미포만이 이제 배 조립품을

놓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비좁아졌다.

거기서 2.5일마다 1억 달러짜리 거대한 배 한 척씩이 쏟아진다.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배를 찍어낸다”고 했다.

세계 조선 역사에 없던 일이다.



지금 전 세계 바다에 새로 나오는 배 5척 중 1척이

현대중공업 제품이고, 10척 중 4척이 한국산이다.

한국 조선소들은 중국이 만드는 싼 배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주문이 너무 밀려 배를 지을 도크가 없다.

길이 200m에 15층 높이의 배를 땅 위에서 조립해

바다로 끌고 가 띄운다.

이런 신 공법은 거의 모두 한국 조선소에서 나오고 있다.

 선박 엔진을 만드는 공장의 상무는 이 기술자들을

“나라의 보물”이라고 했다.

이들이 세계 엔진 시장의 35%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지스함에선 아직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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