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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00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4 조회수443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안드레아 동락사제와 동료순교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며 재난의 시작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참고로 루카 복음서의 章구분을 다시 한다면 어제 복음인 '가난한 과부의 헌금'(루카 21,1-4)은 20장에 포함시키고 오늘 복음부터 21장으로 구분하는 것이 복음 묵상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장 전체의 말씀은 큰 틀에서 보면, 불의한 율법학자들과 수석 사제를 비난하고 있으므로 이들과 대비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으로 20장을 마무리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배열인 듯합니다.

그리고 21장에서는 불의한 세상은 언젠가는 멸망하고 하느님의 나라(사람의 아들의 날)가 올 것이므로 거짓된 자에게 더 이상 속지 말고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므로 이러한 구조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20장에 배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성전을 보고 몇몇 사람이 감탄을 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성전은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체가 있는 것은 그 어느 것이나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거짓된 것이고, 허망할 수밖에 없으므로 형체가 있는 우상을 섬기지 말고 모습이 없는 영원한 생명인 진리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언젠가는 파괴될 성전을 예를 들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를 문자 해석하여 성전 파괴를 예고하신 것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은 장차 도래할 일을 알고 계신 신통력을 가진 분으로 이해한다면 오늘 이하 말씀은 참으로 난해한 말씀이므로 별별 해석이 난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어느 누가 우리의 서울이 멸망하고 미국의 뉴욕도 멸망한다고 예언하였다면 정신 나간 사람의 치부하겠지만 오천년 후에는, 만년 후에는, 형체가 있는 것은 유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예언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께 질문한 사람도 성전 파괴가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하고 묻고 있지만 예수님도 그 시기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계시며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표징에 대하여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표징의 절정은 어둠이 가장 짙을 때이며 어둠이 가장 짙으면 그 이후에는 점점 밝아지므로 악의 세력이 종말을 고하는 시기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영원한 생명을 사는 길은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않고 오직 진리의 가르침만을 따라야 하며, 진리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뿐이므로 누가 더 이상 내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칭하며 별별 소리를 다하더라도 절대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긴 중세 유럽의 모든 악행은 모두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으므로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불의와 거짓의 끝은 파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와 거짓은 파멸을 면하고자 선과 진리에 맞서 극렬하게 저항할 것이므로 이런 상황을 오늘 복음에서는 전쟁과 반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도래하면 두려운 쪽은 불의와 거짓의 세력이며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끝내 승리할 것이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므로 전쟁과 반란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반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의 노력으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싸움에서 불의가 잠시 동안 승리하므로 더 암담하겠지만 끝내 진리는 승리한다는 말씀을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에서 '무서운 일들'은 잠시 동안 불의가 승리하므로 해와 달은 빛을 잃게 되므로 하늘의 세력이 흔들리는 모습이며,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하신 말씀은 진리가 끝내 승리하므로 "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루카 21, 27)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는 묵시문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재난의 끝은 새로운 시대 즉 진리의 세상이 도래함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하 21장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예루살렘은 악의 세력이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로마 제국은 진리의 세력이 됩니다. 설마 예수님께서 로마 제국을 진리의 세력이라고, 하늘의 세력이라고 생각하셨을까요? 이는 천부당만부당하므로 21장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말씀은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에 복음서가 써진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은 불의와 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의와 거짓에 맞서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이러한 자신과의 싸움이 수행이며 우리 사회의 불의에 침묵하지 않아야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형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하고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배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므로 진리의 삶을 살지 못하고 갖은 형상인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부자는 결코 하느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은 단순히 재물이 많은 부자를 말씀하셨다기보다는 진리가 아닌 재물이라는 우상을 섬겼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전부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도 재물을 섬기는 그런 잘못된 삶을 버리고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복음 말씀을 이해하는데 급급하여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하신 말씀에서 '내 이름으로 와서' 이 말씀은 예사롭지 않은 말씀이지만 숙제로 남겨두고, 대림 제1주일 묵상에서 21장을 마무리하며 오늘 부족한 묵상을 보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재난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우리 사회의 정의를 구현함에 있어서
어찌 고통이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고통을 환란의 고통에 비유하시며 오직 진리의 삶만을 생각하며
어떠한 고통과 고난도 굳건하게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가르침만이 진리이므로 그 어떤 감언이설에도 속지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에 충실하며 매일매일 주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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