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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크린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3 조회수612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한 8,51-59

 

 

성경 봉사를 하라고 파견나간 첫 본당에서의 일이다.

한 시간 전 도착하여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성체 앞에 앉았다.

 

그날의 복음말씀도 바로 이 말씀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그날 마음 안에 떠오른 이미지다.

 

스크린이 성당 벽면에 펴지고 그 위에 예수님이 비쳐졌다.

눈부시게 하얗고 깨끗한 스크린에 얼룩이 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얼룩으로 인해 그분의 영광을 가릴까봐 근심스러웠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책 만드는 일에 파견받은 것을 무척 좋아했다.

 

삼년 동안의 주일 복음해설 책이 다 완성되고 나니

결국은 본당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몇 년 동안의 예비 과정을 거쳐서,

또 그즈음 밤을 설치며 철저히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긴장 속에서 첫 강의를 기다리고 있는 나로서는,

내 자신의 영광은커녕

그분의 영광을 가리지나 않을까 그것이 가장 걱정되었다.

 

나는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주님, 제가 당신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오늘,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다.

 

이제 내게 그날의 떨림과 두려움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갈수록 정도가 미약해지고, 왠만한 상황에 대해서도 적응력이 생겨났다.

훨씬 자연스러워지고 용감해지고 순발력도 생기고 익숙해지고 원활해져간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며 점점 더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

누렇게 빛바랜 스크린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점점 더 얼룩이 많아진 것은 아닌지.

군데군데 짜깁기를 한 누더기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나라는 존재의 스크린 때문에

주님의 다정한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고

그분의 거룩한 모습이 얼룩져 보이지는 않을지

내가 너무 드러나 그분을 통째로 가리고 있는지

나의 걱정은 세월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오! 주님!

제가 더 이상은 제 자신을 죄와 악으로 더럽히지 않게 도와주소서.

이미 더러워진 얼룩을 회개의 눈물로 씻어낼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이기심과 욕심을 없앤 투명하고 깨끗한 스크린으로 복원시켜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영광을 훼손시키지 않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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