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펌 - (51) 모피 입은 호떡장수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01 조회수45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4년1월27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기녀므사무엘하6,12ㄴ-15.17-19;마르코3,31-35ㅡ

 

     (51) 모피 입은 호떡장수

                       이순의

                   


ㅡ용기ㅡ

"웜마! 아주머니는 모피 입고 호떡 꿔 뿌리요. 잉"

호떡장수 아주머니는 웃음으로 답을 했다.

"아니, 요새 밍크코트 입고 파출부 한다는 소리는 들어 보았지만 모피 입고 호떡 굽는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디 여기서 목격을 해 버리네요."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볼 일을 보고 돌아오는 전철을 타려다가 시장기가 돌았다. 요기를 하려는데 붕어빵과 호떡이 나란히 서서 노점상을 하고 있다. 손바닥에 침을 뱉어 탁 쳐보니 붕어빵 쪽으로 튀었다. 그래도 호떡집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호떡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침은 붕어빵 쪽으로 튀었지만 그렇다고 꼭 붕어빵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그럴 거라면 바로 호떡집으로 들어가지 뭐 하러 침은 뱉어서 방향타를 보는가? 그거야 심심하니까 재미로 해 본거지만 호떡이 먹고 싶은데 호떡집으로 침이 튀면 기분이 더 좋은 거고, 뭐 붕어빵 집으로 튄다 해도 내 맘이니까 맨송맨송한 마음 보다 재미 맛이 더하지를 않겠는가! 호호

 

그란디?!

호떡장수 아주머니께서 목에 털이 부숭헌 모피코트를 입고 뭉툭한 팔목에 토시를 씌우고 호떡을 굽고 있다. 사람 좋아하는 내가 그냥 호떡만 먹고 나올 위인이 아니다. 호떡 두개를 시켜 놓고 인생사 소설책은 못 듣고 와도 콩트 한마당은 들어야 직성이 풀리지를 않겠는가?

"부자 집 마님께서 얼마나 더 부자가 되시려고 모피입고 호떡을 굽는다요? 잉?"

 

실타래의 끝을 잡았다. 이제 풀어야 할 일이다. 십 수 년 전에 잘 살을 적에 산 모피인데 아까워서 장롱 지기를 하다가 유행이 지나서 못 입었단다. 어른들 더러 입으시라고 했더니 무겁다고 안 입으셔서 계속 장롱 지기가 되었는데 이렇게 요긴하게 쓸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피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에 거금을 들여 장만 할 때만 해도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려워져서 호떡을 구워야만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곱게 단장까지 허신 아주머니께 맨얼굴의 제가 실례인지는 모르지만 저 보다는 위로 보이시는디 자제분들도 다 성장을 한 뒤에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허실까요?"

나는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을 만큼의 미끼를 던질 줄도 안다. 늦게 늦둥이로 아이를 낳아서 그 놈 키우느라고 나왔는데 처음에는 창피해서 마음고생이 더 심했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갈 때는 내일부터는 그만 해야지 그랬다가 아침이면 또 뭐 해 먹고 사나 싶어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단한 용기십니다. 얼굴을 뵈니 부자 집 안방마님 상호신데 그만큼 우리사회가 격이 없어진 거지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처음에는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과연 저 일을 며칠이나 버틸지 신뢰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눈치 보며 하는 일 보다 자유롭고 마음이 편해서 이제는 오히려 당당해지고 벌어들이는 맛도 쏠쏠하단다. 그러는 동안에 대화가 끊어질 정도로 손님들이 밀려들었고, 호떡을 굽고, 어묵국물을 퍼 주는 손놀림이 바빠져야 했다.

 

"이제 보니 모피코트만 멋진 것이 아니라 쎄련된 휴대전화에 몸매가 늘씬한 전기난로까지 우와~~ 여염의 호떡집하고 격이 다르네요. 거기다가 나까지 복을 밀고 들어와서 손님들도 밀어들고 오오~~~ 좋으네요."

아주머니는 그렇다고 하시며 마냥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두개의 호떡을 다 먹었다. 그리고 천원어치를 더 주시라고 했다. 한마디의 말이라도 더 듣고 싶어서 계속 말을 했다.

 

"아주머니 옛날 같으면 체면 차리시느라고 못 허셨을 일을 모피까지 입고하신다는 건 세상이 참 좋아진 거지요?"

아주머니는 연신 웃으시면서 손님께 충실하시느라고 더 달덩이 같이 피어오르고 계셨다. 더 이상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작별을 하기로 했다.

"어찌까 아주머니, 나는 이 길을 일 년에 한두 번만 지나가는데 또 만나질지 모르것네요."

자주 좀 지나가시지 왜 그러시냐고 하시며 끝을 못 지은 콩트를 안타까워  하시는 듯이 호떡봉지를 건네 주셨다.

 

아침에 일찍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삶이 고단한 백성이 명절을 지내고 난 신세가 한탄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하느라고 아픈 나에게 더 아픈 마음을 나열하고 있었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도 이렇게 살을 거라면 차라리 지금 인생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다. 내 인생도 어쩌지 못하는 주제에 늘 그랬듯이 성령의 인도를 청하며 입이 열리는 대로 답을 했다. 답이 필요하고 위로가 아쉬워서 온 전화이기 때문이다. 성심을 다해 위로와 격려를 해 줘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있는 희망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답니다. 5년 후에 내가 이렇게 산다 해도 우리는 이런 인생 속에서 한탄만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기쁨도 행복도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은 단지 돈일뿐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아침이면 화장실에 앉아 배설할 수 있는 축복을 왜 기쁨으로 보시지 않습니까? 5년 후에 지금만큼만 산다 해도 행복입니다. 5년 후에 가장이 아파서 눕거나 내 자신이 아파서 눕기라도 하면 지금 부족하다는 물질 보다 더 난감해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그때는 오늘을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좋았다 라고! 그러지 마십시오. 오늘이 기쁨이라고 사는 것이 5년 후의 희망이며 행복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은 죽는 날까지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분은 5년 후, 10년 후에도 장애인이므로 목숨을 끊어야 된다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과 나와 동행해 주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그 자체가 희망입니다.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왜 그때 좀 더 일하지 않았을까? 라고 후회하시는 것 보다 어서 자리를 털고 노동을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바라보며 맑게 크는 자식들에게 부모라는 절대적인 지주가 되어주십시오.

 

지금 당신이 갖고 싶은 만큼의 돈이 있다 해도 당신은 결코 만족 할 수 없습니다. 그 만큼의 물질은 그 만큼의 욕심을 부르며, 아마 십중팔구는 당신의 자녀사랑 법으로 보아 고액과외를 하게 될 것이고, 당신은 또 부족하다고 슬퍼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학원이라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굶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하루해를 허송하지 않고 열심히 일 했음에 감사하십시다. 그럼 반드시 5년 후의 인생을 걱정하기보다 희망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판도라의 상자에 갇힌 희망은 각자에게 공평하답니다.>

 

전화기 속의 여인은 출근시간이 한 시간이나 늦었다고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의 변변찮은 설교가 약효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전철 안에서 오늘 하루에 만난 두 여인을 떠 올리면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내 자신의 실체가 더 궁금했다. 주어지는 대로 사는 사람! 되는 대로 사는 사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사는 사람! 과욕을 버리고 사는 사람! 이 모두가 하루 이틀에 얻어진 지혜가 아니었다. 끝없이 나를 포기하며 좌절하며 사랑의 끈 하나만을 부여잡고 견딘 희망의 결과일 것이다.

 

모피코트를 입고 정성스럽게 담아주신 호떡을 먹고 싶어서 봉지를 열었다. 봉지 속에는 두 개만 담겨 있어야 할 호떡이 세 개나 들어 있었다. 어떡하나? 잘 먹겠다는 인사도 못 하고 왔으니! 전철 안에서 조용히 먹는 호떡의 맛은 아주머니의 용기가 느껴졌다. 달덩이처럼 복스런 웃음이 내 가슴을 따습게 하고 있다. 모두들 주어진 몫을 채우느라고 열심이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는 일으켜 달라고 형제를 찾는다. 넘어진 형제를 일으켜 주는 형제가 진짜 형제이다. 나는 오늘 그들이 나를 일으켜준 형제들이었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들의 삶이 나에게 희망을 향한 용기를 주고 있다.

 

ㅡ"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마르코3,33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