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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뇌성마비 장애인 시인 이상용씨의 이력서
작성자진장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9 조회수717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용씨는  글씨 한자 쓰는데 5분이 걸리고 말 한마디를 하려해도 온몸을 뒤틀며  진땀을 흘리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학교 문 앞에도 안 가보고 혼자 독학하여 시인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이상용 시인쓴 이력서입니다.

 꽃동네  게시판에서 가져 왔습니다.  위사진은  제가  '희망의 집-장애자의집'에 봉사 갔다가 찍어 온 것입니다.

 이상용 시인의 본명은 이일행입니다.  -녹암

  

*********

나의 이력서

 
                                                         이상용
 기적같은 생애입니다.
절망에서 다시 거듭난 人生입니다.
이것은 내게 주신 주님의 축복이고  정말 크나큰 은총입니다.
오늘은 내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 할까 합니다

장애로 가정에서 버림 받아서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는 청년기의 외로움과 설움.- 그것 때문에 매일 매일 남몰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글로 씌어진 것,- 시의 첫 작품이 되었습니다.

나는 1987년부터 아마추어 시인으로 10년 넘게 여기저기 시를 발표  KBS.SBS.MBC 텔레비전에 50번 이상 방송됐고 신문.잡지.기업사보.대학교 신문에도 수없이 나왔습니다.

그 중엔 없어진 시도 있습니다만 세상에서 내 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만 해도 나는 좋고 또한 행복합니다.
나는 학교 문앞에도 안가봤는데 내가 정말 시인이 될수있는가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노력앞에서는 안되는게 없습니다.
뭐 꿈이 별거입니까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 보십시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심심해서 낙서 같은 시를 썼습니다.
차츰 시가 뭔가 배우며 시가 뭔가 느꼈습었습니다.
나도 처음엔 문학이 뭔지 몰랐었습니다.
그 10년동안 배우며 문단에 등단할 준비를 했습니다.
어느날 시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나를 문단에 추천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솟대문학 3회 추천받고 1998년에 한국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했습니다.
도중에 결핵성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6개월후 퇴원하고 몸이 조금 나아져 시를 계속 썼습니다만 원고 보낼때마다 낙방했었습니다.
결국 3년뒤 드디어 3회추천 완료 -  나는 해냈습니다.
이로써 정식으로 등단했습니다.

지난날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몸부림치며 나의 존재 의미를 찾아서 나 혼자만의 고독한 문학세계를 헤매며 꿈을 키워 왔지요. 한때는 병 때문에 미음도 못먹고 링게르 주사를 맞으며 꿈을 키워 왔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일으켜 주시고 내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감일까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이기 때문에 글씨 한자 쓰는데 5분이 걸리고 말 한마디를 하려해도 온몸을 뒤틀며  진땀을 흘리지만 웃을 때 그의 얼굴은 천국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나에 대한 남들의 이야기입니다.
또 일반 문단에도 도전해서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을 탔습니다.

내 능력이 시인으로서 높은 길이 얼마나 먼지 초조해 있었는데 이렇게 당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이번에 '문학세계' 신인상까지 수상하고 보니 정말 꽃구름을 타는 듯한 기분입니다. 한달에 한 번 오시는 수필가 반숙자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나를 보살펴 주시는 형제, 자매님께 수사, 수녀님께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한국 문단을 빛낸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창간 16주년을 기념하여, 전 장르별(시, 시조, 아동문학, 수필, 소설, 평론, 희곡) 우수한 작품으로 한국문단을 빛낸 작가 및 문학발전에 이바지한, 한국문학을 빛낸 200인을 본지 및 세계문인협회 편집위원회에서 추천, 선정 하였습니다.

이에 본지는 한국문학을 빛낸 200인에 선정되신 선생님께 재단법인 한국 S. G. I 에서 후원하는 종합문예지 월간 [문학세계] 를 1년간(2004년11월호 ~ 2005년10월호)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또 몇 년이 지난 후 산문에서도 인터넷 문학사이트 문장 월장원 입상 했습니다.

거짓 없이 글쓰는 역사에 남을 작가이고 싶었습니다.
요번에 산문부문에 ,입상하고 보니 하면 안 되는 게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내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 분의 크신 사랑 이 영광, 하느님께 되돌리고 싶습니다.
상금이 20만원 상품권이 왔는데 그 상품권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샀습니다.
카세트,조끼,방석,돗자리,분유,땅콩차를 원장 수녀님에게 사달라고 부탁해서 샀습니다.
상품권은 다 쓰고 그 대신 내가 원고료 받은 걸로 하느님께 미사 때 5만원을 두 번 나누어 봉헌했습니다.
 
내 기억속에 아로새겨진 기쁜 날이 또 있습니다.
그 날은 가장 기쁜 날 입니다.
그 날은 2003년 10월 12일 내가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서 열린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연합 백일장에 나간  날입니다.
처음에는 나는 상을 탈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려고 안나가겠다고 수녀님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한번 가을 나들이라도 할 겸 마음을 비우고 백일장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가을 단풍을 보니 시상이 기막히게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이 끝나고 원숭이가 자전거 타고 모기하고 재밌게 노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정말로 그 원숭이가 영리하고 신기했습니다.
백일장 심사 발표하는 시간입니다.
심사위원 세 분이 심사를 하였습니다.
맨 처음에 3등 먼저 발표했는데 상품이 미니카세트 한대씩 주어졌습니다.
3등이 세명이었습니다.
그다음에 2등을 발표했는데 내 이름이 없었습니다.
상품은 디지털 캠코더 두 명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때까지는 나는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마지막 1등을 발표했습니다.
1등은 최고급 디지털 카메라 -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마지막 순간 나는 내 기억 속에 아로새겨졌습니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내가 상품 받은 것을 우리집 사무실에 기증했습니다.
지금도 유용하게 쓰여집니다.
 
또 내 기억속에 남는 기쁜 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학 단체 한국 문인 협회 인준 받은 날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대학교 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한국 문인 협회에 시험을 쳐서 정회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쟁률이 서울대학교 합격율 보다 더 높습니다.
그 곳에는 머리가 가장 비상한 문인들이 모여있습니다.
현재 만명 가까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나의 어린 날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내가 요즘에 수필 부문에 삶터문학 수필 신인 문학상 당선이 되어 더욱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거짓없이 글을 쓰는 역사에 남을 작가이고 싶었습니다. 온갖 비평과 나에 대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도 나는 용서하고 극복하여 오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나만이 가야할 고독한 문학 세계, 때로는 포기하고 싶고 떄로는 눈물 날 때도 있었지만 정말 극복할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시를 쓰며 살아 왔습니다.
수필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고 보니 하면 안되는게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그 시간이 끝나는 날까지 봉사하며
열심히 마음에 와닿는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모든 분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오신부님 말씀 중에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스스로 일깨우는 자가 되어라 내 마음에 그 말씀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2007년 10월 23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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