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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자들의 온갖 이설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9 조회수410 추천수3 반대(0) 신고
 
 
신자들이 소브리노 신부의 저술들이나 다른 출판물에 담긴 주장들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한 안전한 기준을 제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앙교리성은 교회의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부 명제들에 주의를 환기시킬 의무를 지니고 있다. 교회 안에서 특별한 소명을 지닌 신학자는 신학이 신앙의 학문임을 언제나 명심하여야 한다. 신학 활동이 다른 데서 출발하면 자의적 판단의 위험에 빠지고 결국에는 동일한 믿음을 잘못 제시하게 된다. (제2차바티칸공의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그는 (소브리노 신부) "공의회의 본문들이 ... 제약과 위험도 있다" 라고 했다. 이에대해 신앙교리성은 "물론 교의 정식은 신앙의 신비에 담긴 모든 것을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할 수도 없고 성경과 성전에 비추어 해석하여야 하므로 제한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식들이 위험하다고 할 근거는 없다. 이 정식들은 계시의 진정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소브리노 신부는 교의(교리)적인 발전을 모호하고 심지어는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저자(소브리노 신부)는 성자와 예수님을 구분해서 소개하여 독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두 주체가 현존한다는 암시를 준다. 성자께서 예수님의 실재를 취하시고, 성자께서 예수님의 인성과 생애, 운명, 죽음을 체험하신다는 것이다. 그 성자께서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께서 바로 성자라는 사실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저자의 이 구절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소브리노 신부는 이른바 '들어 높여진 인간'이라고 하는 신학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들어 높여진 인간'의 신학은 에페소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의 교의 정식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 안에 하나의 위격을 지니셨음을 천명하는 가톨릭의 신앙에 위배된다. "칼케돈 공의회는 에페소 공의회와 완전히 일치하여 두 본성이 '한 위격과 실체' 안에서 일치하게 되었다고 분명히 단언하고 ... 마치 그리스도 안에 두 개체가 자리한다는 주장을 배격한다" (교황 비오 12세 회칙)
 
소브리노 신부는 또한 "유한한 인간이 하느님의 속성을 지니지만, 무한한 하느님은 예수의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라며 '속성의 교류'를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속성의 교류'라는 말, 곧 신성과 인성의 속성이 서로 교류할 가능성은 칼케돈 공의회가 천명한 '두 본성 안에서' 그리스도 위격의 단일성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이다.
 
"복음서나 사도 서간에서 성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한 이야기나 그리스도께서 직접 당신 자신에 대해 하신 이야기를 두 위격에 구분하여 적용하고, 일부 이야기는 말씀과 별개인 독자적인 한 인간에게 적용하고 또 하느님에게 맞갖은 다른 이야기들은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신 말씀에게만 적용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파문될 것이다" (에페소 공의회) 소브리노 신부의 주장은 예수님 위격의 단일성이 분명하지 않고 '들어 높여진 인간'에 대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소브리노 신부는 그의 저술에서 예수님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전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개자로서 예수님의 위격은 절대화 해서는 안되고 하느님 나라와의 관련성 안에서 묵상하여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자신과 구별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저자(소브리노 신부)는 "우리는 중개자와 중개를 구분하여야 한다. 하느님 나라는 정확하게 말해서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 뜻의 성취일 뿐이고 이 성취를 우리는 중개라고 한다. 이 중개는 ... 이를 선포하고 주도하는 한 사람과 연관된다. ... 그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 오리게네스의 정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중개와 중개자는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 그분께서 실제로 인간이 되심으로써 그분께 속하게 된 것이다" (소브리노 저자 저술책)
 
여기에 신앙교리성은
 
저자(소브리노)는 예수님과 하느님 나라는 구별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중개와 중개자 사이의 본질적인 연계를 올바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중개 사명을 위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그분의 신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제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의 인격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나 현존해 왔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는 동일시 된다. 이러한 동일시는 교부시대부터 강조되어 온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회칙(교회의 선교사명)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나라를 선포하셨을 뿐만아니라 당신 안에서 그 나라를 현존하게 하시고 실현시키셨습니다" "만일 이 나라를 예수님과 분리하면, 그분께서 계시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상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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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을 감흥에 따라 팔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흠숭(영광) 하라 ]
 
 
"두 위격에 구분하여 적용하여, 일부 이야기는 말씀과 별개인 독자적인 한 인간에게 적용하고 또 하느님에게 맞갖은 다른 이야기들은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오신 말씀에게만 적용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파문될 것이다."
===> 예수님과 아버지 관계, 예수님과 어머니 관계, 하느님 아버지 +  어머니 마리아 부부관계 .... 등등 파문될 자들의 괴상한 소리(이단설)들은 어디에서 나올까 묻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다음의 교회교리 가르침(특히, 아래 파란색)을 묵상하기를 권합니다.
 
머리와 몸, 많은 것으로 이루어진 하나,
이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머리가 되어 말씀하시고
또 몸이 되어 말씀하십니다.
머리로서는 자신을 '신랑'이라 부르고
몸으로서는 '신부'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796>
 
 
그리고 또한 마리아를 통하여 완성된다는 그런 생각은 성 루도비코의 본래의 마음과 다른 것으로써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들을 일시적인 감흥에서) 누구라도 한 개인이 작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며 여신 숭배로 인하여 성인 공경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기도 합니다.
 
신학자들은 자기가 겪은 체험을 교회 자체의 체험에 비추어 신중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교회의 이러한 체험은 성인들의 삶에서 독특하고도 순수하게 빛나고 있다. <로마 신앙교리성에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윌리엄 조셉 레바다 추기경> / 수정하거나 해명하지 않으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결정이 내려짐. <박여향님 관련 글 참조>
 
소브리노 신부께서 중개 <와> 중개자를 구분했듯이
구속 <과> 구속자 ... 를 구분하는 이설도 전파되려는 기미도 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 안에 ''두 주체''가 현존하지 않습니다. ''두 본성 안에서'' 그리스도 위격의 단일성 뿐입니다.
가톨릭 신앙은 ''한 위격과 실체'' 안에서 일치하게 되었다고 분명히 단언합니다.
[ 예: 구속자(인성) + 구속주(신성) = 그리스도 성자 하느님이라는 단일한 위격 뿐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본성 안에서 "성부의 아드님이시다''는 단일한 위격 뿐이다. <가톨릭교리서>
 
그런데 무슨 <어머니의 것은 내 것, 내 것은 어머니의 것>이라든가 <하느님 아버지 + 어머니 마리아의 부부관계>
같은 해괴망칙한 소리로 영혼들의 생명을 넘기려고 하는지 여신으로 숭배하려고 애쓰는 자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
 
하느님께 올바로 흠숭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성모님을 자기 감흥에 따라 욕되게 팔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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