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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새해 아침 2012년 1월 1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12-30 조회수442 추천수4 반대(0) 신고

새해 아침 2012년 1월 1일

 

루가 2, 16-21.

 

새해 아침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로운 새해일 것을 빕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충만할 것을 빕니다. 2012년 한 해 동안 하느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셔서 그분의 은혜로우심이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 주위에 실천되어 ‘아버지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빕니다.

 

오늘은 2012년을 시작하는 초하루이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 축일’입니다. 그리고 또한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는 말은 기원 후 431년 에페소공의회가 믿을 교리라고 반포하면서 사용한 표현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았다는 뜻으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때,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초기 그리스도 신앙인들의 믿음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5세기 에페소공의회가 열리기 전, 콘스탄티노풀 주교 네스토리우스는 예수가 출생할 때는 인간이었지만, 후에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만일 그의 주장대로,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후에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 참다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예수가 출생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면, 그분은 신앙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공의회 교부들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인 것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말하기 위해 예수는 태어날 때,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었다고 긍정하였습니다.

 

공의회는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긍정하기 위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는 표현을 채택하였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천주의 성모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가 태어날 때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지, 마리아의 품위를 격상시키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이 표현은 그 시대 신앙인들이 예수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 필요하였습니다. 예수의 삶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참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전하는 말입니다.

 

1970년에 교회는 그 교의적(敎義的) 표현을 가져와서 오늘의 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신앙인은 없습니다. 예수가 마리아로부터 출생할 때,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교회가 1970년에 이 축일을 제정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은 다른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고, 예수님의 삶에서 하느님에 대해 알아듣고, 그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다시 천명한 것입니다.

 

오늘은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 축일은 1967년에 제정되었습니다. 과거에는 통치자 한 사람이 보장하는 평화였습니다. 통치자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백성을 평화로이 살도록 해 주면. 모두가 평화를 누렸습니다. 교회가 세계 평화의 날을 제정한 것은 세계의 평화는 이제 통치자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말하겠지만, 그리스도 신앙인에게 평화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성탄날 밤, 우리가 들은 루가복음서(2,14)가 베들레헴의 하늘에 울러 퍼진 천사들의 환호라고 말하면서 전하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에도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니.”(마태 5,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이웃을 돌보아주며 사랑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해 일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우리가 이웃의 자유를 빼앗고 억누르면서 평화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명령하고 지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 싶으면,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고, 죄인을 용서하면서, 그 섬김이 어떤 실천으로 나타나는 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웃을 보살피며 섬기는 사람이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그 실천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십니다.

 

어느 고을에서 죄인이라 낙인찍힌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평화 안에 가시오.”(루가 7,48). 그 여인은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으니 평화 안에 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하느님이 어떤 보살핌이며, 어떤 은혜로우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여인은 그 깨달음을 안고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나갑니다.

 

우리 앞에는 또 한 해의 세월이 펼쳐졌습니다. 은혜롭게 영접하여 살아야 하는 세월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은혜로운 것이 되게 해야 하는 세월입니다. 새해 아침에 우리는 복 많이 받으라고 서로 인사합니다. 하느님이 베푸신 새해를 은혜롭게 살자는 뜻을 담은 우리의 인사말입니다. 하느님이 은혜로우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 같이 착각합니다. 욕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이웃에게 무자비하기도 합니다.

 

은혜롭게 베풀어진 생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은혜로움을 실천하여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물질과 명예를 위한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욕구는 흔히 사람을 두 발 가진 동물이 되게 합니다. 하느님이 베푸셔서 있는 우리의 생존이며, 세월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관대할 수 있으며,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배워 실천해야 하는 하느님의 진리입니다.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한 해를 오늘 우리는 또 시작합니다. 베푸심이 흐르고 또 흘러서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기원하며, 새해 한 해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좋으신 하느님이 베푸신 좋은 한 해를 시작합시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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