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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만한 존재, 충만한 의미 - 2.1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10 조회수44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2.2.10 금요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축일

 

호세2,16.17ㄴ.21-22 루카10,38-42

 

 

 

 

 





충만한 존재, 충만한 의미

 

 

 

 

 



오늘 새벽, 정원에 잠시 누워 달빛 별빛 맑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떠오른 글입니다.

 

 

 

 

 



-누워/하늘을 보면

 

나는/하늘이 된다/호수가 된다

 

하늘 담은 호수가 된다

 

이 행복/이 축복

 

내 이름이다-

 

 

 

 

 



하느님을 담을 때 충만한 존재, 충만한 의미의 삶입니다.


수도원 창립 만25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 2월9일 어제 우리 수도원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요셉수도원 십자로의 중심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림하셨습니다.

뜻있는 분들이 사랑의 봉헌으로 세워진 예수부활상입니다.



수도원의 땅은 애당초 하느님의 거룩한 성지였습니다.

수도원 배 밭 한 복판을 종과 횡으로 가로지른 십자로가

바로 거룩한 성지임을 상징합니다.


불암산 정상에서 보면 한 눈에 환히 들어나는 십자로입니다.

바로 십자로의 중심에 예수부활상이 들어섰으니 금상첨화입니다.


어제 3시경 후 수도형제들이 다 모여 조촐하면서도 품위 있는

축복식을 거행하면서 모두가 풍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부활상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현존을 상징합니다.

 

 

 

 

 



1. 그리스도 예수님은 아침마다 동녘에서 떠오르는 태양,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에 모심으로 예수성심의 비밀을 보여주십니다.

 



2. 십자로의 중심에 자리 잡고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공동체는 물론 우리 삶의 중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3. 그리스도 예수님은 가슴 활짝 열고 십자로의 중심에 서시어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 지치고 피곤한 이들, 아프고 병든 이들,

   외롭고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시며 위로와 평화, 치유를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11,28)라는 말씀이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4. 십자로의 중심에 양 팔을 펴들고 우뚝 서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마치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순경처럼 우리 삶의 한 복판에

   서시어 우리의 내적 삶을 교통정리 하시어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공동체의, 우리 삶의 교통순경이십니다.

 

 

 

 

 



이런 그리스도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만사형통입니다.

 

충만한 존재에 의미 충만한 삶입니다.

더불어 깨닫게 된 귀한 통찰을 또 나눕니다.


예수부활상이 들어섬으로

그렇고 그렇던 나무와 바위가 존재감을 획득하고

의미를 지니게 됐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익명 속에

그렇고 그렇게 존재하는 나무나 돌, 바위는 얼마나 많겠는지요.

예수 부활 성상 주위의 단풍나무와 바위는 오늘을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예수 부활 상으로 인해 성화되어

뚜렷한 의미 있는 존재로 부각된 단풍나무요 바위입니다.



예수 부활 성상의 상징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좌우사방으로 퍼져 주위의 모두를 성화시키고 축복하며 구원하니

모두가 의미 있는 존재들이 됩니다.



저는 여기서 불림 받은 자들의 축복을 연상했습니다.

 

주님을 몰랐다면, 주님이 부르시지 않았다면

그렇고 그런 존재로 익명 속에 묻혀, 허무와 공허 속에 살다가

우리 인생 마쳤을 것입니다.


사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살아갑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없었다면 성녀 스콜라스티카도,

복음의 마리아와 마르타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에게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들 모두가 존재감 없이 허무의 어둠 속에 묻혔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수도형제들로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며

익명의 어둠 속에 묻혀 존재감 없이

어디선가 무의미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공허와 허무에서 우리를 불러내어

당신과의 관계를 통해 충만한 존재, 충만한 의미를 살게 하셨습니다.

 



이래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복음의 마리아처럼

주님을 찾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우리 삶의 모두입니다.

중심을 잡는 것이요 기본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부수적인 것들은 저절로 따르기 마련입니다.

 


마르타의 활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객전도의 삶을 바로 잡자는 것입니다.

 


우선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자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 분도수도생활의 모토도 ‘기도하고 일하라.’이지

‘일하고 기도하라.’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잊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세상사에 빠져 허무의 어둠 속에 살아가는지요.

 



다음 말씀은 마르타뿐 아니라

활동주의(activism)에 빠진 모든 이들에 대한 주님의 자비로운 충고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정말 최고의 보물은, 아무도 앗아 갈 수 없는 최상의 보물은

주님과의 깊은 관계입니다.

 


또 주님께 대한 최고의 환대는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1독서의 호세아는 개인의 비극적 체험을 하느님 신앙으로 승화시킵니다.

여기서 아내는 창녀처럼 배신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을, 우리를 상징합니다.


호세아를 통해 광야의 초심으로 돌아와

당신과의 관계를 새로이, 깊게 하라 호소하는 주님이십니다.

 



“이제 나 그 여자를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나를 아내로 삼으리라.

  그러면 너는 주님을 알게 되리라.”

 



우리 모두를 당신의 영원한 파트너로 삼아

사랑의 관계를 깊이하고 싶은 것이 하느님의 영원한 열망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이시고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들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 오시는 주님을 환대하며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풍성한 축복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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