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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알렐루야” - “아멘”- 4.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08 조회수442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2.4.8 예수 부활 대축일 사도10,34ㄱ.37ㄴ-43 콜로3,1-4 요한20,1-9

 

 

 

 

 





“알렐루야” - “아멘”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강론은 알렐루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납니다.


하느님은 마침내

알렐루야로 사시다가 아멘으로 마치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을 압축한 두 말

역시 알렐루야와 아멘입니다.

성경 역시 알렐루야와 아멘 두 말로 압축됩니다.


예수님처럼 알렐루야, 찬미로 살다가 아멘, 감사로 마치는 삶이

진정 아름다운 부활의 삶입니다.


오늘 부활 대축일 아침, 동녘 하늘에 떠오른 찬란한 태양은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또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하는 알렐루야 태양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오늘 복음 묵상 중 문득 생각난 외젠 뷔르낭(1850-1921)의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애제자’

(1898년 작,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그림이었습니다.

 


찬란한 황금색으로 동터오는 부활의 여명을 뒤로하고

달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이 참 초조하고 불안해 보입니다.


마치 빛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태양처럼 뒤에서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두 제자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고개를 돌려 위를 보면 태양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이 그대로 빙그레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오늘 복음 장면이 상징하는바 깊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둠이 깃든 빈 무덤의 장면은

하느님 친히 천지창조를 시작한 창세기 서두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1,1-3)

 

죽음과도 같은 어둠의 심연 속에서 빛으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재창조가

빛으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장엄한 순간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할 때 진리이신 주님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으로부터 나 역시 새롭게 창조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빛이 나의 내면을 비출 때

죽음과 죄의 어둠에서 해방되어 영육의 치유와 구원입니다.


누구나 자명하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열렬히 찾고 사랑했던 제자들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했습니다.


오늘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갈 때 베드로보다 앞서갔던

애제자의 주님 사랑이 어느 정도 인지 짐작이 갑니다.


이어 수제자인 베드로의 뒤를 따라 무덤에 들어간 애제자의 모습에서

그의 겸손을 봅니다.


진정한 사랑은 겸손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무덤에 들어간 애제자는

사랑의 눈이 열려 빈 무덤을 보는 순간 예수님의 부활을 직감합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빈 무덤 넘어 부활하신 주님을 직관한 사랑의 관상가, 애제자였습니다.

순간 무덤을 향해 달려갈 때 뒤에서 환히 비추던 새벽 여명의 빛이

부활하신 주님의 빛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사도행전에서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찾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던 제자들을 증인으로 택하셔서

이들에게 나타나신 주님이심을 베드로가 증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는 것은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할 때 진리이신 주님과의 만남이요 체험입니다.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할 때 이탈의 초연한 사랑이요 삶입니다.

저절로 저 위에 있는 천상의 것들을 추구합니다.

세상의 무시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되

세상을 소유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깨끗한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바로 주님 부활을 체험한 우리에게 좋은 위로와 힘이 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추구합니까?

돈을, 일을, 명예를, 재물을, 좋은 자리를 추구합니까?


아닙니다.

추구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추구할 것은 천상의 것들입니다.


천상의 것들 그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천상의 것들을 추구할 때

지상의 부수적인 것들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할 때

부활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걸맞은 품위 있고 존엄한 삶입니다.


천상의 것들에 맛들일 때 지상 것들의 맛에서도 자연스런 이탈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자 행복입니다.

우리의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자 우리의 모두입니다.

‘나-부활하신 주님=허무’요

‘나+부활하신 주님=충만’이란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주님을 잃어 길 막혀 좌절이요 길 잃어 방황입니다.


하느님 향한 우리 평생 순례여정의 삶에

부활하신 주님보다 더 좋은 도반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을 끝맺는 마지막 구절에서

주님은 우리의 평생 도반이 될 것을 선언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나가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봅니다.

하느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나의 존재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바로 이게 ‘참 나’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나는 영원한 미궁일 뿐입니다.


평생 ‘참 나(眞我)’를 살지 못하고 ‘거짓 나(假我)’를 살다가

억울하게 인생 마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처럼

 

알렐루야와 아멘, 찬미와 감사의 부활의 삶을 사시길 원하십니까?

 

주님을 열렬히 찾고 사랑하십시오.

 

이래야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합니다.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입니다. 영원한 도반입니다.

 

이 거룩한 부활 대축일 미사시간,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이신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 되시고자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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