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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상설교는 실천 가능성 있는 말씀일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15 조회수492 추천수7 반대(0) 신고

 

 

산상설교는 구체적 실천 가능성이 있는 말씀인가?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도대체 나약한 인간이 그대로 실천하기엔 너무 높은 이상인 것 같다.

실제로 아주 옛날,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성경을 집어던진 적도 있었다.

가당치도 않은 말씀으로 사람을 옭죄고 죄의식에 빠지게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에 대해 과거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 말은 그만큼 실천하기 힘든 과제라는 말이 아닌가.

당연한 일이지만 이 말씀 때문에 고민한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내로라하는 학자들조차도. 그러니 어찌 반갑고 고맙지 않겠는가.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해봤던 사람들을 위해, 여기에 그 논란들을 요약소개해보고자 한다.

다만 일일이 책을 찾아보지 못하고 강의로 들은 말씀이라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을 미리 알려둔다.

=> 표시는 각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 

 

① H. Windisch의 견해:  완벽주의적 해석.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계명을 주면서 완벽한 준수를 기대했다는 주장이다.

 

=> 그러나 이 견해는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이며, 산상설교를 복음이 아닌 율법으로 보는 견해라 하겠다.

또한 Wellhausen은 산상설교를 Talmud와 결부시키기도 하는데,

우리는 복음이 유대교의 범주를 훨씬 능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② 정통 루터교의 견해: 이행불능의 이론이라는 해석.

 

   인간적 조건으로 볼 때 산상설교는 인간이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

산상설교의 요구는 인간의 무능과 한계, 죄책감을 깨닫고

은총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로마 7장; 율법의 무능을 거론하는 장 참조.)

 

  => 그러나 산상설교는 인간의 무능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인간의 선행 의지의 이행을 예수께서는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 7,13-27의 “제자의 길은 좁은 문, 비좁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는 맥락에서).

 

즉 참 제자라면 마땅히 그분의 계명과 지시를 따라야 할 것이다.

마태오는 ‘주님 주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며 실천이 따르지 않는 신앙에 경종을 울렸다.

마태오 25장도 신앙의 실천에 비중을 둔다.


③ J. Weiss 와 E. Schweizer 의 견해: 잠정 윤리적 해석

 

   산상설교는 종말의 전면적 파국에 직면하여 최대 최선의 노력,

세말 직전의 회개를 위한 마지막 설교요, 호소라고 보는 것이다.

 

 

 

즉 긴박한 최후 시각(종말이란 예외적 상황)을 당하여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라 하겠다.

이 견해는 복음을 쓰던 시대는 종말이 목전에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오늘은 오늘의 시대에 맞는 윤리적 요구를 이행하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알버트 슈바이처는 이 주장을 한 사람으로서,

자기 시대에 요구하는 바는 '생명의 외경'이라해서 의학공부를 하고 아프리카 오지로 떠났다.

(그는 원래 신학 대사전을 8권이나 편찬한 성서 신학자다.)


  => 그러나 산상설교의 가장 큰 역점은 인간의 노력에 전적인 신뢰를 둔다기보다

하느님의 구원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있다.

또한 그분의 말씀은 당시나 현대, 세말 직전뿐만 아니라 세말 이후에도 해당한다.


④ Gerd Theiben의 說:

 

   카리스마적인 유랑 설교가들에게는 실천 가능하다고 본다.

예로 프란치스코 성인을 들 수 있다.

글자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간간이 있어 왔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실행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결론을 정리하면,

산상설교는 계율이 아니라 ‘초대’이다. 법이 아니라 福音이다.

 

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여 극단적인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구하는데 반해,

복음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새 삶의 토대로 삼으라고 외치는 것이다.

 

산상설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멍에로써 씌어준 게 아니라

반대로 생활화시킨 신앙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를 조건 없는 은총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나를 새롭게 살도록 초대하신다.

즉 구원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지금

그 보답으로 하나의 새 삶이 자라나기 시작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삶의 초대를 은총으로 소중히 받아들이되

내가 실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 전 생애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상은 백운철 스테파노 서울가톨릭 신학대학 성서신학 교수신부님께 들은 강의 내용.)

...........................

 

여기에 덧붙여,

산상설교에 이어지는 8-9장의 치유모음집이나 그 이후의 복음서 전반을 보면,

 

결국 산상설교의 이상은 우리 혼자 풀어나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신다. 

그분이 우리의 ‘병고와 허약’을 치유시켜주시며 ‘함께 하시는’ 가운데

그 완덕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주시고 모범을 보여주신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는(마태오의 끝 구절) 주님의 약속을 믿고

부족한 나 자신을 완성해주시도록 믿고 맡겨 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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