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월 29일 토요일 / 듣고도 믿지 않는 이들
작성자오상선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8 조회수391 추천수7 반대(0) 신고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전해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
그리고 엠마오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제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체험한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베드로와 사도들이 후에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믿지 못하였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다.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토마 사도이리라.

우리의 신앙은
전해들은 신앙이다.
우리의 신앙은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서 알아들은 그런 신앙이 아니라
전수받은 신앙이다.
따라서 우리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우리에게 이를 전해준 형제들의 믿음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의 증언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우리 신앙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야 되는 우리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그 말씀과 뜻을 전해주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을 통해서 전해진
말씀과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하느님의 말씀이요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는데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그 믿음은 헛것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우선 이런 원칙을 세워보자.

첫째, 하느님께서는 거의 항상 형제자매들을 통해서
말씀해 주신다는 것.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우리의 일상기도나 꿈을 통해서
직접 나에게 전해 주시는 일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거의 예외적인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하느님께서는 형제자매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둘째, 따라서 항상 형제자매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하느님께서 형제자매들을 통해 당신 메시지를 전해주신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믿음이라면
나는 그 형제자매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말씀하실 지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셋째, 하느님의 메시지는 보통 우리의 일상적 사고를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라면
우리의 머리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의 머리로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믿을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메시지가
형제자매들을 통해서 전해질 때
나는 긴장해야 한다.
그때가 바로 하느님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넷째, 하느님의 메시지는 그래서 때론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머리를 뛰어넘는 것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메시지 앞에 당혹감과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하느님의 기묘하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때론 황당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때론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는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결코 무시하지 말자.

다섯째, 그 자리에서 알아들을 수 없다하더라도
계속 그에 대해 묵상하는 습관을 갖자.
보통 하느님의 메시지는 그 자리에서 알아듣기가 힘들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래, 바로 그 뜻이구나!> 하고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섯째, 그 메시지가 나와 그 메시지의 전달자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하느님의 뜻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하느님의 메시지는 메시지를 받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형제들에게 전했다고 해서
막달라여자 마리아나 엠마오의 제자들이 영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오, 하느님
나의 지성에 의지하지 말고
다른 형제자매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뜻을 올바로 알아듣고
오로지 당신 영광을 위해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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