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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티베리아스의 아침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8 조회수548 추천수11 반대(0) 신고

 

 

 

요한 21, 1-14 

 

가족과 같았고 친구와 같았던 스승을 잃고 나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물론 컸지만

사랑하는 분을 배신했다는 자책감은 그보다 훨씬 컸다.

 

경황없이 도망치기 바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하늘 보기가 부끄러웠다.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을까?

잊으려 하면 할수록 생각나 고개를 털어야했다.

 

 

제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새

그분과 만났던 최초의 장소로 돌아가 있었다.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던 시몬.

함께 죽으러 갑시다했던 토마스.

천둥의 아들들이라 불리던 의협심 강한 제배대오의 아들들.

그분에게서 참 이스라엘인이라 칭찬을 들었던 나타나엘.

그리고 또 그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몇 명의 제자들도.

 

 

그런데 그곳은 이미 갈릴리에서 티베리아스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며칠 사이에 온 세상이 낯선 곳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

그들에게는 이제 예전의 고향 산천이 아니었다.

하기야 바뀌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반석처럼 굳건했던 자신들의 마음도 그렇게 쉽게 바뀌어버렸는데.

 

그러나 모든 것이 바뀐다해도 어찌 그분의 기억까지 바뀔 수 있으랴?

어찌 그분과의 감미로운 추억들까지 없어질 수 있으랴?

 

바람도 그 때와 같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도 그 때와 같은데

그분은 지금 없고,

자기들만 남아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허전한 마음을 무엇으로라도 채워야할 것 같았다.

그물 하나 가득 고기라도 잡으면 나아질 것 같았다.

 

 

“우리도 함께 가겠소.”

그들은 배를 타고 그물을 쳤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은 허공에 그물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밤새 허탕을 쳤어도

누구 하나 돌아가자는 말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시간을 낚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이 터올 때까지 그들은 배 위에 앉아있었다.

  

짙은 물안개가 서서히 걷혀지는 가운데에서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누군가 대답한다.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꿈을 꾸는 듯,

집단 최면에 걸린 듯,

그들은 일어나 그물을 거두어 배 오른쪽으로 던진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고기가 셀 수 없이 많이 잡혀서는 분명 아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물고기는 고작 153마리에 불과했다.

아무리 커봤자 일곱 명의 장정이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은 아니다.

사실 그곳은 큰 고기가 잡힐 만큼 깊은 곳도 아니었다.)

 

그들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심장은 더욱 떨리고 있었다.

민감한 제자라면 그분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주님이십니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드는 베드로.

 

그렇다.

그들은 밤새도록 뭍에서 백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누구 하나도 노를 저어 멀리 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고기 잡을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들은 옛 추억을 낚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옛 추억이 다시 현실이 된 것이다.

다른 제자들도 그분 주위로 몰려들었다.

 

밤새 속옷 바람으로 있었던 제자들.

밤새 허기로 지친 제자들을 위해

어느새 숯불을 준비하고 그 위에 물고기까지 올려 놓으신 주님.

그 옆에는 빵도 마련되어 있었다.

 

빵과 물고기!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것도 이 근처 어디쯤이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먹어야 한다고 타이르시듯,

기운을 내라고 등 두드려주시듯,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그 날,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그들은 옛날과 다름없이 허기를 채워주시는 스승을 만났다.

마음의 상처를 자애롭게 쓰다듬어 주시는 주님을 만났다.

 

그렇게 티베리아스에도 부활의 아침이 훤히 밝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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