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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주의 '비판적 동조 부류' [ 친 나주파 분석 ]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7 조회수580 추천수8 반대(0) 신고
 
 
<아래 다음의 글은 Re:오늘은 윤씨네 천막 휴업?? (자유게시판) 김영희님 댓글에서 이어 옵니다>

 비판적 동조 부류(친 나주파) = 외부(나주 밖)의 판단 + 내부(나주 안)의 판단 = 합성

장이수 (tpwkdygks624) (2008/03/27) : 제가 4년 전부터 가톨릭 게시판에서 몇몇 사람들(나주 관련자)의 증언에서 보아 온것을 회상해 보면 ... '나주' 내에서도 몇개의 '부류'가 있답니다. 그 중에서 하나 기억하는 것은 '윤홍선'씨를 교주처럼 여기는 이들과 달리 '나주 성모'를 진정한 발현으로 믿고 섬기는 '비판적 동조' 부류입니다. 그들은 '나주 윤씨'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기는 하나 '나주 성모'는 확고하게 믿는다는 '비판적 동조 부류'의 한 형태입니다.  

이들 부류는 '나주와 거리를 두는' (열성추종자는 주류) '비주류'로서 '나주 성모'를 '자신들의 성모'로 확증합니다. 따라서 '나주'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주류'라고는 보지 않고 그들 자신과 같은 '비주류'로 여기며 이들에 대한 동정심을 지니고 '나주 성모'에 대해서만 함께 어울려 있는 특징(친나주파)을 가집니다.

그들의 '나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위에서 언급된 "나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함께하는 기도로 인하여 악습의 치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라는 '나주 성모'에 대한 시각입니다. / 즉, 쉽게 풀이하면 ... [ '나주' = '윤무당, 윤교주' 라는 외부의 판단] 에 따르고 [ '나주 성모' = '성모 발현' 이라는 내부의 판단]에 근거하여  그들 스스로 '나주 성모발현'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주(윤홍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모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펼치게 됩니다.

이들은 마리아에 대한 나주와 다른 또한 다른 맹신의 한 형태를 띕니다.  다소 교회 내에 있으면서 '성모 발현'이 한국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는 '성모님을 꺼집어 내리는' 광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나주 성모'를 자신들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믿고 싶어 합니다. 마리아에 대해 과장하고 과대하는 경향은 '나주 주류'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친 나주파)은 '나주 윤홍선'씨에 대한 '주류들의 교주화'하는 것에 대해 심정적으로 비판적일 뿐이고 그들 자신의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공경은 여전히 '나주 성모'를 그리워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교회에서 인정해 주기를 '나주 주류'처럼 지극하게 바라기도 합니다. 박쥐가 낮에는 '길짐승'으로 밤에는 '날짐승'으로 변장해서 활동하듯이 '나주 마리아'에 대한 그들의 '마리아 신심 활동'을 거룩한 성전(전쟁)으로 여깁니다.

그들(친 나주파)은 교회와 상관없이 '나주 성모'에 대한 자신들의 발현인정을 토대로 '나주 성모 메세지'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도 합니다. 나주 안의 여러 부류(장사꾼들도 있다, 투자자들도 있다는 증언)들이 있슴을 현실적으로 받아 들이면서 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나주 메세지'를 신봉합니다. '공동 구속자' 신봉도 그 일환입니다. 이는 평신도들 뿐만아니라 소수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인터넷 상에서)

'비판적 동조 부류' (박쥐)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내적으로 숨어 있다가 어느 시기에 따라서 변모하는 그런 형태입니다. 그 내면에는 마리아에 대한 극도의 신봉(과장, 열정)이 소용돌이 치기 때문에 교회에서 교회법적으로 '파문 교령'을 취했다고 해도 꺼지지 않는 검은 연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영적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리면 언젠가는 다시 솟아 오르는 숨은 불씨 입니다.

그들은 여러 마리아에 관한 책을 통해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더욱 확장시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나주 성모'의 '주류'가 되어 '나주 메세지'가 온 세상에 전하여 지는 그런 공로를 취하고 싶은 몽상에 젖어 있기도 합니다. 영성적으로 '주류'의 자리를 지켜 나가고자 하는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 형식을 구성합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과장할 수록 그들 단체(비판적 동조) 내에서 지도자 (리더) 자리를 유지합니다.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나주 참례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지극히 표시하면서 그들을 끌어 들이려고 합니다. 따라서 드러내어 '나주 안'에서는 활동하지 못합니다. 나주 밖에서, 교회 안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웁니다. 나주 참례자들에게 지극한 동정심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들의 욕망 속에 단지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판적 동조 부류, 친 나주파인 그들은 '나주에 대한 교회의 결정'에 내면적으로는 불순명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순종) 인간의 탐욕이 마리아 신심을 훼손합니다. 거짓 계시들에 집착하고 여러 메세지들에 눈길을 돌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하고도 결정적인 계시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하고 그 결론을 '마리아'에게서 보상받고자 하는 인간 속성의 이기심에 불과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교리(교도권)를 업신여기고 말씀을 함부로 바꾸는 일에도 무덤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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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나주 마리아'(가짜)를 몽상하고 메세지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다시 보내는 글입니다

 

그들은 이러하다 /  2008-03-21 오후 7:13:11 / 118615

나주의 메세지 내용이 나쁘지 않다는 것에 상호 차이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메세지에서 <언어의 영분별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제가 글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저는 언어 한 단어에 대해서도 보지만 글 전체의 영적인 흐름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를들면 한가지, 여러개를 밝혀 드릴 수는 없습니다. - 거기서 변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주에 그리고 MBC PD 수첩에서도 방영된 부분입니다. 즉, "누가 나를 내려 줄자가 없느냐"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 생명 입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복음에 보면 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예수님께 조롱하며 "내려와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 전에 광야에서 시험한 유혹자 역시 "뛰어 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응대하셨습니다. 3가지 시험을 이겨내신 예수님이십니다.
또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마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 (루가복음서 4, 13) 
 
이 악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광야에서  "뛰어 내려 보라"  <와> 골고타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베드로가 "안됩니다"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 (마태오복음서 16, 23) 가리옷 유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리옷 사람 유다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 "그 때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요한복음서 13, 27)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분명한 이유(성부의 사랑)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주 메세지에서는
 
"누가 나를 내려 줄자가 없느냐" 입니다.
광야에서  "뛰어 내려 보라"  <와> 골고타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위의 3가지에 대한 영적인 분별이 없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사탄은 아주 교활하게 진보했습니다. 광야에서  "뛰어 내려 보라"  <와> 골고타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에서 한걸음 더 진보하여 이제는 '거짓 예수'가 직접  "누가 나를 내려 줄자가 없느냐" 하고 유혹합니다. 십자가 고통이 너무 처참해서 성모상에서는 "피눈물이 흐릅니다" 그들에게 인간의 죄악성이 극도로 분출됩니다. "누가 나를 내려 줄자가 없느냐"    +   "피눈물이 흐릅니다" ..... 보는 이들은 분노와 흥분이 극도로 쌓입니다.
 
광분된 심신상태의 영혼들은 분출되어 말합니다.  "주님성모님 안됩니다."  성모상은 드디어 핵심을 말합니다. 예수와 성모의 처참한 고통 속에서 분노와 인간 타락에 대한 혐오, 거기에 <각종 거짓 메세지>가 전달 됩니다.
 
 
 
[ 고통을 미화합니다 ]
 
사탄은 고통을 무기로 삼습니다
갈등, 분열, 다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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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온갖 거짓 계시 (속이는 영들)에 주의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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