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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별처럼 빛나는 이들" - 2008.3.16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7 조회수583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8.3.16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태21,1-11 이사50,4-7 필리2,6-11 마태26,14-27,66

                                                              
 
 
 
"별처럼 빛나는 이들"
 


마태오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는
그대로 현 세상의 축소판 같기도 하고
심하게 말하면 지옥 같기도 합니다.
 
온갖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
생명과 죽음이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무지와 나약함, 죄악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시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열렬히 주님을 환영하던 군중들은
주님의 수난 현장에서는 폭도로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미친 듯이 외쳐댑니다.
 
열두 제자들 중 하나인 유다는
은 돈 서른 닢에 유혹되어 주님을 팔아넘기고
뒤늦게 후회하며 비참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수제자라는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주님의 예언대로 세 번 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슬피 울었고,
주님께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약한 제자들의 모습은 그대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악의 세력이 되어
주님을 죽음에 내몰고 우유부단한 총독 빌라도 역시 이에 동조합니다.
 
온 백성은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조롱하고
군사들, 수석 사제들, 율법학자들과 원로들,
심지어는 못 박힌 강도들도 주님을 모독하고 조롱합니다.
 
악의 연대는 이렇듯 강고합니다.
 
완전히 악의 세력에 포위된 지옥과도 같은 주님의 수난현장입니다.

시궁창에서 피어나는 연꽃들입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그 한 복판에 주님이 계시고
곳곳에 꽃 같은 아름다운 이들이 있기에 살 희망이 있습니다.
 
캄캄한 죄악의 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이들을
오늘 복음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시몬,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라고 고백한 백인대장과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중들며 따르던 여자들,
그리고 주님을 무덤에 안장한
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 요셉이 있었습니다.
 
악과 선이 적나라하게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어제 얼핏 본, 서태지와 양대 산맥을 이룬다는,
나이 40의 갓 난 딸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신해철의 인터뷰 기사의 두 대목이 신선했습니다.
 
다음 기자의 질문에 신해철의 막힘없는 대답입니다.

“대한민국은 현세지옥이라고 말했는데,
  왜 떠나지 않고 계속 지옥에서 살고 있나.”
 
"이 지옥에서 내 부모님이 사시고, 내 친구가 살고 있다.
  내 딸도 이 지옥에서 엄마 아빠가 살고 있지 않나.
  여기를 천당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 용납이 되지만,
  여기서 도망 나가는 짓은 하면 안 된다."

아주 건강한 대답입니다.
 
주님이 계시고 곳곳에 별처럼 빛나는 이들,
연꽃 같이 아름다운 이들 있어 천국으로 변하는 세상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를 살지 못하면
어디서도 하늘나라를 살지 못합니다.
 
다음 인터뷰 대목도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감수성이 풍부해진 건가.”
 
 "아이를 낳으면서 많이 배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 딸이 어저께 몰랐던 단어를 옹알옹알하고 있다는 것,
  매일 아침 기저귀 축포가 터지고 있는 것이 종교의 신비처럼 느껴진다."

사실 눈만 열리고 귀만 열리면 어디서나 신비체험입니다.

어제 성체성사 성체 분배 중 어느 자매가 안고 나온,
잠들어 있던 아기의 천사 같은 모습도 잊지 못합니다.
 
순간 ‘아, 하느님 주신 희망의 선물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잠자는 아기 모습이라는데...
어두운 세상, 하느님 주시는 희망의 선물인 아기 얼굴을 통해
잃었던 우리 얼굴을 찾게 되고 또 살 힘을 얻게 됩니다.
 
천진한 아기 얼굴의 거울에 자주 우리를 비추어 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수난 장면 중
과연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다 생각하십니까?

비단 오늘의 수난 복음뿐 아니라
양상은 달라도 우리 삶의 현장 역시 수난의 현장입니다.
 
끊임없이 세상 죄악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수난의 현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빛나는 별로,
시궁창의 연꽃처럼,
천진한 얼굴로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처럼 살아가는 겁니다.

오늘 수난 복음을 통해 감지되는 주님의 뚜렷한 면모입니다.

주님은 누구도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침착하고 차분하며 대체적으로 무저항의 침묵의 분위기입니다.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마치 이사야가 묘사하는 주님의 종 모습 그대로입니다.
 
“주 하느님이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지도 않는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오늘 복음의 다음 말씀을 통해서도
주님의 비폭력, 무저항 정신이 잘 들어납니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악을 악으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십자가의 길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합니까?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수난현장 한 복판에 계신 주님이시고
주님의 삶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기도입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오신 예수님의 평생 삶을 요약하는 기도입니다.
 
마지막 기도 역시 감동적입니다.
 
얼마나 아버지와 가까운 삶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을
마침내 부활시키신 하느님이십니다.
 
생명의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에 항구할 수 있는 비결은
기도뿐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주님과 하나 되어 십자가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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