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7 조회수957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3월 27일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Peace be with you."
(Lk.24.36)

  

제1독서 사도행전 3,11-26
복음 루카 24,35-48
 
 
아주 친밀한 관계는 0에서 40 또는 50Cm 거리로 앉아 있을 때 가장 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거리를 가리켜서 ‘연인의 거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저 친한 정도의 친구는 어떻게 될까요? 이런 관계는 50에서 120Cm로 앉는 것이 편하다고 하네요.

또, 친하지는 않지만 안면이 있는 사이는 2미터에서 4미터의 거리로 앉아야 가장 편하다고 하지요.

그리고 공적인 거리는 4미터 이상 떨어져야 편하다고 합니다. 이 거리는 딴전을 피울 수 있는 거리이지요.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의 거리일 수도 있고, 연설이나 강의에서 강사와 청중 사이의 거리가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과 나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를 생각하여 봅니다. 공적인 거리? 아니면 친하지는 않지만 안면이 있는 거리? 또 그저 친한 정도의 거리? 중요한 것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거리는 0에서 50Cm 정도의 거리를 가리키는 아주 친밀한 연인의 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때 주님과 나의 거리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제 곁을 떠나신 것 같고 그래서 그 거리가 4미터 이상 떨어진 공적인 거리처럼 느껴집니다. 이 느낌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대하는 제자들도 간직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인 줄로 알았으며, 엠마오까지 함께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곁에 계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노력을 하실까요? 2천 년 전에도 그러한 노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굳이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믿게 하기 위해서 직접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직접 음식을 잡수심으로 인해 성경 말씀대로 직접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해주십니다.

문제는 이렇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떨어지려는 우리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간격을 가까이 할 수가 있을까요?

그 예를 공 던지기 놀이에서 찾아봅니다. 한 사람이 공을 던졌는데 다른 사람이 무시를 하고 공을 받지 않으면 어떨까요? 놀이가 되지 않겠지요. 상대방이 공을 던졌을 때 온몸으로 가서 받고, 또 상대방에서 힘껏 던지면서 공 던지기 놀이는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를 통해 더욱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지요.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랑이라는 공을 던져주십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온몸을 던져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랑을 힘껏 던져야 하겠지요. 그래야 주님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공을 던져주셨는데도 본체만체 한다면 어떨까요? 놀이가 유지될 수 없으며, 가까운 관계로의 진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주님. 이제는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과 우리의 거리가 연인의 거리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실천합시다.




두려움과 맞서기(‘좋은 생각’ 중에서)

중국 노나라의 현인 안회가 그의 스승 공자를 찾아가 말했다.

“선생님, 얼마 전 노 젓는 솜씨가 뛰어난 사공을 보았습니다. 신기에 가까웠지요. 갑자기 그 비법이 궁금해서 사공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비법은 가르쳐주지 않고 선문답 같은 소리만 했습니다.”

그러자 가만히 안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자가 물었다.

“선문답 같은 소리라... 그래 그 사공이 뭐라고 하더냐?”

“사공이 대뜸 저에게 헤엄을 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헤엄을 칠 줄 안다면 쉽게 노 젓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했죠. 그 다음에는 잠수를 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잠수를 할 수 있다면 노를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더라도 금방 배울 수 있다고 하면서요. 선생님 도대체 헤엄치는 것과 잠수하는 것이 노를 잘 젓는 법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에 관한 문제다. 만약 헤엄을 잘 치거나 잠수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노 젓는 걸 배운다고 해도 그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배가 뒤집히면 어떡하나?’하는 마음속 두려움이 배움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안회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이 없는 마음, 그것이 바로 사공이 말하는 노를 잘 젓는 비법임을 알게 된 것이다.
 
 

"You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Lk.24.48)

 
 
Je Pense A Toi(내 가슴에 그대를 담고) / Richard Abel
 
Love Me For A Reason - Boyzone
 
조명연 마태오신부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 http://www.bbadaking.com/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