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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42) 선물로 받은 조기 한 마리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6 조회수40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4년1월18일 일요일 연중 제2주일(일치주간, 이민의 날)ㅡ이사야62,1-5;사고린토1서12,4-11;요한2,1-11ㅡ

 

          (42) 선물로 받은 조기 한 마리

                                    이순의


                            

ㅡ이해ㅡ

백화점에 가면 명절이라는 걸 실감 할 수 있다. 불경기라는 경제침체로 걱정인데 그나마 명절 기운이 도는 곳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달해야 할 선물세트들이 각양각색의 얼굴을 하고 방방곡곡의 주소를 새긴 명찰을 달고 대기 중이다. 백화점의 높은 천정까지 쌓고도 모자라서 인력을 총동원해서 포장을 하고 분리를 한다. 가는 곳마다 행복과 미소가 받는 기쁨이 되어 기억 될 것이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명절에 나도 선물을 하나 받았다. 조기 한 마리였다. 명절 전에 지짐이를 하느라고 경황이 없는데 아는 분이 찾아 오셨다. 손에 달랑 조기 한 마리를 들고 오신 것이다. 그분의 아픔을 들어 드리느라고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 분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아야 했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봉사 중에 내가 들어 주지 않으면 신부님이나 수녀님도 찾아가지 않고 성사도 안 보고 마음의 죄만 지는 시시콜콜한 상담을 가끔 해 주는 일이 있다.

 

그 분도 여느 여인들과 다름없이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절규가 있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울보’라고 별명을 지어 놓을 정도로 눈물은 한 방울도 안 나오는데 항상 징징 거리며 다니신다. 기쁘게 살아도 다 못 살고 가야 할 인생을 노상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불평만 하다가 늙으시는 분이다. 조금 솔직히 말하면 그 분께 지겨울 정도의 방문을 받으며 답답한 푸념을 들어드려야 했다.

 

그런데 조기 한 마리를 들고 오셔서 또 징징 거리시는 것이다.

"내가 명절에 조상님께 올리려고 조기 한 두름을 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기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이거라도 가져 왔으니 서운하다고 하지 말고 들게"

우리는 이미 제사 준비가 다 끝났으니 가져가시라고 극구 사양했으나 기어이 던져 놓고 가셨다. 속으로 너무 웃음이 나오는데 그냥 그대로 두고 지짐이를 지지느라고 깜박 잊어 버렸다.

 

밖에 외출하고 돌아오던 짝꿍이 뒹구는(?) 조기 한 마리를 보고 명절 음식을 소홀히 다룬다고 잔소리를 하면서 집어 들었다. 내 손에는 음식 준비로 계란물이며 밀가루 같은 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나의 손을 덜어서 냉장고에 넣으려고 집어든 것이다. 나는 그걸 보는 순간 다시 웃음이 나와서 그분의 얘기를 간단명료하게 지껄이고 말았다. 짝꿍은 들었던 조기를 유심히 처다 보더니 갔다 버리라고 다시 내동댕이 쳐버리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을 해서 지짐이를 지지던 손을 놓고 조기를 집어서 냉동실에 넣었다. 낮에 잠을 자야 하는 짝꿍은 좁은 우리 집에 오셔서 징징 거리는 그분을 좀 못 마땅해 하던 참이었다. 그럴 때면 늘 주님의 이름을 내세워 짝꿍을 달래곤 했었다. 그러니 주님의 이름으로 참아 온 짝꿍이 화가 나버렸다. 차라리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는 게 짝꿍이 화가 난 이유다. 우리 집에 오셔서 마시고 가신 차만도 몇 잔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지혜는 항상 뛰어 나시다. 당신을 믿고 사는 내게 주님은 대단한 배경인 것만은 분명하시다. 나의 주변에는 항상 나보다 훨씬 역행하는 지위와 구조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신혼 때는 지금 보다 더 어려웠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사람이 두렵지도 않았고, 삶이 차별화 될 수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으며, 가진 게 없으면 마음이 아무리 커도 의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었다.

 

모든 것이 희망이었다. 열심히 살면 곧 대등하여 진다는 야무진 배짱이 있었다. 그래서 제약 보다는 거리낌 없이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것이 젊음이었다. 그런데 아는 집에 가면서 우리 형편에 최선을 다한 선물을 장만하고 반갑게 기쁜 마음으로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 선물이 놓였던 곳에 더 근사한 선물이 놓여 있었다.

 

우리부부의 바늘방석 같은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명절에 들어 온 선물들을 간단하게 대충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선물은 곧 집 밖으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말로 아팠다.  그 때 우리부부는 내 손으로 색종이를 접더라도 세상에서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선물을 하거나, 비교 될 거라면 아예 돈이나 축내지 말자는 것으로 삶의 신조를 바꾸어 삼았다. 그리고 세상은 어느 한쪽에 가려 차별화 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해 갔다.

 

또 다시 주님의 이름으로 짝꿍에게 그 때의 아픔을 상기시켜 주었다.

"저 분이 그 때의 우리 마음이라면 당신은 지금 죄 짓는 거야. 당장에 성부와(성호를 긋는 것)하고 반성해야 되거든!"

짝꿍은 이내 미안해하면서도 그 분이 우리 보다 훨씬 잘 산다는데 구실을 붙였다. 그러나 세상의 물질이 우리 보다 많아도 분명히 삶은 우리 보다 불우 이웃이며, 그 분의 생각과 나눔의 방식이 그 만큼이라고 인정하고, 우리는 감사히 받아야 한다고 일렀다.

 

곧 다가 올 명절에 수 없이 많은 선물이 오고 갈 것이다. 그 선물들은 대부분 감사와 나눔의 정으로 두고두고 쓰여 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중에 나의 격식과 품위에 차지 않는 선물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 볼 일이다.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수고를 잠깐만이라도 헤아려 보고 감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때 받은 그 조기는 다음에 구워서 먹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부자 집이라서 조기도 좋은걸 샀다고 느꼈다. 기왕에 주실 거면서 한 마리만 더 주시지 않은 아쉬움을 나누며 그 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다. 조기 한 마리를 들고 오신 그분은 받는 우리 보다 더 망설였을 거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래도 조기 한 마리를 주시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고 있었을 그분의 마음이 우리 가족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양반이 마음조차 없었던 건 아니네. 성당생활이라는 것이 이래저래 마음을 알아주며 사는 거지!"

주님의 이름으로 잠을 설친 짝꿍의 큰 보람이었다. 던져 놓고 가신 조기 한 마리의 얼굴을 백화점의 천정까지 쌓아 놓고 넘쳐나는 얼굴들에 비하겠는가! 그 때 그 조기에 근사한  포장도 없었고, 주소와 이름을 적은 명찰도 붙지 않았지만, 신문지에 말아서 직접 배달하신 그 물색은 아주 그만이었다.

 

ㅡ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고린도1서12,11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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