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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22) (수필) 기원(祈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6 조회수597 추천수9 반대(0) 신고
 
 
 
 
 
 
 
                                       기원 (祈願)
 
 
                                                                             글 :  유정자 / 柳靜子
 
 
새까만 새 두 마리가 문갑 위에 마주 서서 위를 쳐다보고 있다.
나비만큼 작은 그 새에 시선이 머물면 한껏 젖힌 부리와 목이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애절하게 간구하는 모습이어서 번번이 애틋한 감정에 빠지곤 한다.
 
 
 
얼마 전 충북 제천에 갔을 때, 차창 밖으로 이상한 광경이 보여 차를 세웠다.
야트막한 산비탈에 여기저기 긴 장대가 서 있는데, 그 꼭대기에는 저마다 새 같은 것들이 얹혀 있었다.
 
말로만 듣던 솟대임을 직감했다.
호젓한 그곳에 세워진 솟대는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무척 신기해 보였다.
 
 
 
아주 옛날서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는 솟대를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본 적도 없고 그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삼십이 넘어 읽은 어느 시인의 시에서 솟대 끝에 매달린 볍씨 주머니가 바람에 달랑거린다는  구절을 읽고 막연하게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었다.
 
그러고는 몇 해 전 텔레비전 화면에서 솟대에 대해 방영하는 것을 잠깐 보았는데, 솟대란 기다란 장대 끝에 새 비슷한 조형물을 올려놓은 것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제천의 솟대공원에서 실제로 본 그것들은 조각가의 예술적 솜씨 때문인지 무척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였다.
 
 
 
마당 곳곳에 서 있는 장대 위에는 기러기 같기도 하고 뻐꾹새 같기도 한 실제보다 더 커 보이는 새들이 올라앉아 있어 마치 새들의 왕국에 온 것 같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실내에는 박물관처럼 수많은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또는 여러 마리 새가 받침대 위에 서 있는 크고 작은 조형물들은 장식품으로  만든 것인 듯했다.
 
유난히 시선을 끈 것은 백 마리쯤은 될 것 같은, 나비보다 작은 새들이 가느다란 막대 끝에  올라앉아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작품이었다.
 
너무 예쁘고 앙증스러워 마치 옛 여인네가 머리에 쓰는 화관(花冠)에서 흔들리는 장식물을  보는 듯했다.
 
 
 
나지막한 옥상 위에도 수십 마리의 새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목을 젖히고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군무(群舞)를 추다가 동작을 멈춘 발레리나들 같았다.
 
간절하게 기원을 하는 듯한 자세가 애절하게 느껴지는 건 긴 다리와 긴 목 때문인 듯싶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다리가 아니라 장대였지만.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만 보일 뿐 인적이 드문 호젓한 산자락에 여기저기 서 있는 나무 새들이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날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새라서 그럴까. 살아 움직이는 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독과 절망 같은 안타까움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가슴이 찡해 옴을 느끼며, 하늘을 향해 기원하는 자세로 서 있는 솟대들 사이에서 나는 살아오는  동안 무슨 기원을 했나 헤아려 보았다.
 
백일해에 걸려 얼굴색이 새파래져 숨이 넘어가게 기침을 해 대는 아이를 안고 밤을 꼬박 새우던 일,
 
돌도 채 안된 어린 것이 홍역에 걸려 작은 팔과 손바닥으로 밤새 방바닥을 치며 열에 들떠 괴로워하던 기억,
 
친정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세상을 뜨시던 일,
 
이런 절박함에 부딪힐 적마다  애가 타는 마음으로 얼마나 간절히 빌었던가.
 
 
 
 
내가 살아 온 지난 날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기원과 함께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신이든 우상이든 인간은 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의지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새에게까지 이렇듯 기원을 담아 하늘에 비는 것은 아닐까.
 
잔잔하게 흐르는 청풍 호수를 바로 밑에 두고 한껏 목을 젖히고 하늘을 향해 쓸쓸히 서 있는 솟대들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발길이 왜 그리 애잔했는지 모른다.
그 감정은 외로움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하고 그리움 같기도 한, 여러 가지 마음의 빛깔들이 한데 뒤섞인 착잡한 것이었다.
 
오늘도 문갑 위의 새 두 마리는 위를 햘해 한껏 목을 젖힌 애틋한 모습으로 내 시선을 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기원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솟대 위의 새처럼 간절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ㅡ 끝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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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작년 가을에 수필가로 등단하게 된  완료 추천작입니다.
추천제도를 거쳐 수필가가 되려면  두 번의 추천을 받아야 합니다.
5년을 예정하고 시작했는데 3년이 채 안걸렸으니 생각보다 빨리 이룬 셈입니다.
 
 제가 굿뉴스 게시판에 온지 벌써 다섯 해가 되는군요.
그동안 게시판에 잡문을 쓰다가 보니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완료까지 받게 되면 게시판에 올리겠다는 말씀을 전에 드린 바가 있고  또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읽어보시라고 올립니다.
한번에 필사하기가 힘들어 초회 추천작은 내일쯤 올리겠습니다.
 
 
 눈의 피로를 감안하여 문단구성을 풀고  행간을  제 임의대로 띄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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