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월 16일 야곱의 우물- 마태 26, 14-27,66/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6 조회수566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감겨 자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시고 다시 가시어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돌아와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바로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왔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큰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 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다.
 
그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나서 그분께 입을 맞추었다. 예수님께서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그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마태 26,14-­27,66)
 
 
 
 
때는 무교절 첫날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때를 아셨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코헬 3,1-­7)
하는 일마다 꼬이고 이런저런 우환이 겹쳐 고민하던 시절, 이 말씀에 눈이 번쩍 띄어 크게 위로받고 힘을 얻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코헬렛의 이 구절 덕분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러나야 할 때, 침묵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나니 한결 편안하고 일의 앞뒤 사정이 더 잘 보이더군요. 무모한 욕심도 사라졌습니다. 때를 알아차리는 것도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18절) 예수님은 비운을 예감하시며 다가온 죽음을 내다보십니다. 죽어야 할 때, 잃어야 할 때임에도 도망치지 않으시고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18절) 하시며 차분히 떠나실 채비를 하십니다. 아버지가 정하신 때를 아들로서 순순히 받아들이십니다. 온전히 아버지께 순종하십니다.
파스카 만찬 준비는 오로지 예수님의 지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17-­19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19절) 무교절 첫날은 과월절 양을 잡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그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십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신 듯합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16절) 믿는 도끼가 꼭 발등을 찍습니다. 가깝지 않은 사람이 하는 배신은 배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받은 상처의 크기도 훨씬 작습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21절) 만찬 내내 누가 예수님을 팔아넘길지를 두고 밥상머리 대화가 온통 거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서로 자기는 아닐 거라고 믿고 싶어합니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23절) 같은 숟가락을 쓰고 먹던 밥을 나눠 먹어도 허물이 되지 않는 사이,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배신을 합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동고동락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계획이 아닌 돈의 계획을 따랐습니다. 그 대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24절)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니….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그의 책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유다의 행동은 앞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행위(6­13절 참조)와 대조를 이룹니다. 은돈 서른 닢에 그는 혹독한 대가를 치릅니다(27,3 이하 참조).
 
유다가 될 사람은 처음부터 따로 있는 걸까요? 성경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열둘 가운데 하나, 그렇다면 그 확률은 십이분의 일! 그러나 꼭 그런 계산법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유다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숨어 있다는 사실에 동감합니다.
예수님을 돈 주고 팔아넘기는 것만이 배신은 아닙니다. 세례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약속한 몸입니다. 신자라는 자격에 안도하고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으로 제자의 본분을 다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돈과 신앙을 저울질하는 일은 유다의 배신을 능가합니다. 유다 같은 사람은 따로 있을 거라는 착각, 나는 아닐 거라는 오만이 예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합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2절) 가슴이 서늘해지고 등골이 오싹합니다.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해방되던 밤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탈출 12장 참조). 이집트 탈출 때 파스카 양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이제 당신의 때를 알아차리신 예수님은 몸소 파스카 어린양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 대가로 하느님 백성에게 영원한 해방을 안겨줄 것입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26절) 빵을 떼어 나누는 것까지는 유다교의 여느 식사와 똑같지만 뜻밖의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이는 내 몸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조금 살을 보태어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22,`19)라고 전합니다. 1코린 11,`24 역시 비슷하게 회상합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몸은 단순히 육체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전부입니다. 이 두 본문 속에는 대속죄 사상이 확연합니다.
 
예수님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시며 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다짐하십니다. 예수님이 내던진 목숨 덕분에 우리는 새 생명을 얻습니다. 전부를 내주는 것, 살신성인은 사랑의 절정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시고도 절망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받아먹어라.” 다 내주심과 동시에 예수님처럼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빵을 나누심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과 공유하고자 하십니다.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성찬식 또한 예수님의 계획에 투신하라는 요청입니다. 새 생명을 나누어 가진 이로서 새 생명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그분 계획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그분은 폭력 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그동안 삶으로 말씀으로 보여주신 모든 것을 온몸으로 실천하시겠지요. 죽음과 부활이 이를 증명할 것입니다. 때를 아시고 당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우선으로 삼으신 성스러운 결단과 제자들을 위하시는 고결한 자세는 세상 무엇보다도 값집니다.
매일매일 성체성사를 행할 때마다 예수님의 단호한 결단과 고결한 뜻을 기억하렵니다. 과분한 사랑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주여 이 죄인이 - 신상옥 1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2 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 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의지할 것 없는 이 몸 위로 받기 원합니다 3 이 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 들으셨네 못자국난 사랑의 손 나를 어루만지셨네 예수여 이 죄인이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 내주여 나 이제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4 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오 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해 바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