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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픈 사랑이 들어있는 선물 . . .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4 조회수727 추천수11 반대(0) 신고
 
 
 

 

 

 

   예수님이 재판받는 날,
   전에는 서로 다투고 지내던 두 사람이
   그날부터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헤로데와 빌라도다.

 

   또 있다!

   서로 원수지간으로 지내던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도
   예수님을 재판하는 날 서로 친구가 되었다.
   모두 전에는 서로 적들이었던 사람들인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을 처형하는 날에는
   한 통속이 되고 한 친구가 되고 서로 웃음을 주고 받았다.

   십자가는 이렇게 예수님의 적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한 사람을 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작당이 되고
   온갖 거짓 증언들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맞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하나로 뭉쳐 예수님을 십자가 나무에 메달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믿는 신자들도
   십자가로 인해서 서로 하나되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십자가를 지려고 몸을 움직이는지?
   십자가 길에서 피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리고 싶은지,
   시몬처럼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져주고 싶은지.
   아니면 괴로운 성모님을 옆에서 부축하며 함께 가고 싶은지.

   대체로는 나와 상관없이 일처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참 힘드셨겠다...
   어떻게?  ?  저런 일이 있을까?

   하고 그저 곰곰이 따져보기나 해보고
   그 속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십자가길을 바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예 십자가 길에는 전혀 동행하지 않으려고 한다.
   쉬운 예는 본당에서 전체 행사가 있는 날
   (부활계란 만들기, 주일학교 간식, 부활행사 준비, 음식만들기,

    설거지 등등),
   나하곤 상관없는 일처럼 몸을 빼는 경우다.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저 먼 발치에서 왜 저럴까?
   저 사람이 뭘 잘못했길래 저럴까
   어쩌다가 걸려들어서 저러고 있을까?
   나처럼 얼굴도 안 내밀고 조용히 있었으면

   저런 일 안 맡아도 될건데... 
   그렇게 행사가 끝나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십자가(공동체 일, 행사)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도데체 하느님은 왜 나를 이렇게 취급하시나 하고

   불만 섞인 질문만 던지게 된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죽음 앞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며칠 후 내가 죽는다고 상상해보자.
   담담하게 떠날 수 있을까?

   죽음은 정말 두려운 것이다.
   예수님도 그 고통을 상상하며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피땀을 흘리셨다고 한다


  
 죽음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그 두렵고 무서운 죽음을 오늘 예수님도 겪고 돌아가셨다.
   모든 사람이 피하고 싶은 죽음을 예수님도 피하고 싶어하셨고,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을 예수님도 두려워하셨다.
   그리고 끔찍한 고통속에서 죽으셨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본다.
   우리도 결국 죽을 것이다.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예수님도 죽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노쇠해서,
   밧데리가 다 닳아서 쓰러진 죽음이 아니라 살해된 죽음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런 것이다.
   ,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죽음을
   당신이 거두어가신 죽음이다.
   언젠가 누구든지 맞이하게 될 죽음을 예수님이 갖고 가신 죽음이다.

   그래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죽음은
   이미 예수님이 갖고 가신 죽음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
   누구든지 맞이하는 죽음을 예수님이 겪으신 죽음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분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생명을 희망하게 해주신 죽음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신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엄청난 선물을 마련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죽음 앞에서도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요한복음13-15장 참조).
   그분의 죽음은 그 속에 생명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그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친 대로 사는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도 그분만큼 처절한 고통을 살게 하지는 않으셨다.


   그럴 것 같으면 그분이 힘들게 십자가 길을 가실 필요가 없었다.
   우리 각자가 십자가 길을 가야 할 것 같으면 말이다.


  
당신이 대신 가 주시고 우리는 그 길에 동참만 해도 되게끔 하셨다.


   그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하지만 그 선물은

   현세에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된 선물은 달착지근한 사탕 같은 것이 아니다.


  
참된 선물은 그 속에 아픈 사랑이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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