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절 단상
작성자강태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23 조회수508 추천수3 반대(0) 신고
 

봄비는 밤에도 온다


늦으막히 저녁을 들고 문을 나섰습니다.

사위가 캄캄한데 드문드문 서 있는 외등과 스쳐가는 차량들의 전조등이 그 어둠을 걷어내곤 합니다.

낮부터 오던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아주 가늘게 오는 비는 외등 불빛에 안개처럼 흩날리고 있습니다. 커다란 박쥐우산 밑을 파고드는 건듯 부는 바람과 함께 안개비가 얼굴을 감싸 돕니다. 아파트담장을 연한 길은 팔차로 큰길이지만 차량들이 신호등과 함께 가다서다 하면서 전처럼 극성스럽게 내 달리지는 않는, 인적도 뜸한 저녁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사순시기를 절제와 희생, 회개와 보속을 받지 못하고 지내온 것이 후회스러워 부활 성야 미사와 부활대축일 미사를 올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부활절, 이렇게 비오는 밤, 어두운 아파트 담장을 따라 돌면서 왜 이렇게 깊은 상념에 빠져드는지 스스로 반문하여 봅니다.


사람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개개인을 바라보면 큰 사람, 작은 사람, 가진 사람, 없는 사람, 온화한 사람, 괴팍한 사람, 긍정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이, 지역별로는 서울사람, 강원사람, 충청사람, 나라별로는 우리나라사람, 미국사람, 유럽사람 아프리카 사람 . . , 또는 종교별로는 카톨릭신자, 불교신자, 이슬람교신자, 천도교신자 등 등.

그렇게 분류 기준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고 표기되는 단어 속에는 무수한 구분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기에 그 구분과 차이에 따라 각각의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판단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를 이해하는 것과 어느 쪽에 서느냐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굳이 옳다, 그르다, 또는 좋고 나쁘다는 잣대로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이고 그러기에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다양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조직, 단체의 차원에서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나라, 회사, 교회, 군대, 학교 등의 각기 단체의 구성원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 중에 한가지 측면, 즉 국민으로서, 회사원으로서, 교우로서, 전우로서 또는 동문이라는 공통분모로서 맞대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들은 적분을 하면 모두가 단순한 하나의 조직원, 단체의 일원이라는 단속 없는 곡선으로 나타나지만 미분을 하면 무수하고 다양한 특성을 갖는 개개인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리더의 성패는 바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 속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리더는 미분을 통하여 다양한 특성을 갖는 개개인을 파악하고 적분을 통하여 하나의 속성을 갖는 덩어리로 응집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또한 현대의 삶 속에서 회자되는 무수히 부침하는 리더들을 보아오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리더들의 특징은, 그들은 개개인으로서의 자신의 특질을 결코 조직 또는 단체의 특질로 치환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조직 또는 단체의 특질에 자신을 몰입시킬 때 비로소 성공적인 리더로 기능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시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가치일 것입니다.  청자가 그렇게 영롱한 빛을 발하고, 백자가 그렇게 우아한 자태를 잃치 않는 것은 고온의 불가마속의 시련을 견디어낸 결과라는 것과 통하는 이치입니다. 


지하차고가 없는 아파트에는 주차해 놓은 차들이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습니다. 물기로 번들번들한 보닛위에는 단풍잎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습니다. 아니 마치 옛날 벽지의 무늬를 떠오르게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그 떨어진 잎들을 바라봅니다. 그 붉고 푸르고 현란하던 색채는 간곳없고 한결같이 탈색된 누런빛으로 변하였지만 크고 작은 잎들이 하나같이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채 번들거리는 보닛위에 무늬를 이루고 있습니다.  크고 작고, 혹은 손가락 한두 개가 없어졌어도 그것들은 한때 아름다운 단풍이었고, 지금도 이렇게 고즈넉이 자동차 보닛 위에서 무늬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는 여전히 가느다랗게 뿌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가지 끝에 노오란 꽃잎을 안개처럼 뿜어내는 산수유가 어슴프레 자태를 드러내는 밤, 이제 이 비가 그치면 아파트 화단의 이제 겨우 땅을 비집고 올라온 원추리의 키가 훨씬 자라 오를 터이고, 잔뜩 볼에 바람을 물고 있는 목련이 곧 푸- 하고 못 참겠다는 듯 입김을 불어내면 팝콘 같은 꽃잎이 활짝 터지고, 그것을 신호삼아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듯 푸르른 어린잎들을 피워 내겠지요. 깊은 겨울, 죽음의 겨울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지요.

마치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듯이. .

.

2008. 3 23

강태국 프란치스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