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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간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1 조회수501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는 간다>(요한8,21-30)

-유광수 신부-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어디이고 유다인들이 가는 곳은 어디인데 갈 수 없다고 하시는가?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어디이고 유다인들이 가는 곳은 어디인데 갈 수 없다고 하시는가?


부산을 가는 기차와 광주를 가는 기차가 같이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서로 만날 수없고 절대로 부산가는 기차는 광주로 가는 기차를 쫓아올 수 없다. 왜 그러는가?

 

출발할 때부터 서로 목적지가 다르고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에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같이 출발하지만 가면 갈수록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가는 곳에 유다인들이 올 수 없는 이유는 예수님이 가시는 목적지와 유다인들이 가는 목적지가 다르고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유다인들은 처음부터 부산행 열차와 광주행 열차가 다르듯이 서로 신원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목적지가 다르다.


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자기들이 갈 수 없는지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말하는가? 서로 신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각자 속해있는 곳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지도 다르다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아래에서 왔고 예수님은 위에서 왔다는 것이다. 아래는 어디이고 위는 어디인가? 아래와 위란 어떤 장소를 말하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서로의 신원을 말하는 것이요, 소속감을 말하는 것이다.

 

즉 어디에 속해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래"란 세상, 죄, 악마를 말하고 "위"란 아버지를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자기의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라고 하셨고 "너희는 너희 아버지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버지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요한8,44)고 하신 것이다.

 

즉 아래에서 왔다는 말은 유다인들의 신원이 이 세상, 죄, 악마의 자녀라는 것이다. 세상, 죄, 악마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요구하는 것을 따라 살아 간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8,44)라고 말씀하셨다.

 

진리 편에 서지 않은 자가 진리의 길을 갈 수 없고 진리의 길을 가는 분을 만날 수 없다. 거짓에 속해있기 때문에 진리가 아닌 거짓을 말할 수밖에 그래서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편 예수님은 처음부터 세상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오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위 즉 아버지에게 속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실 때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라고 하셨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한다."

"나는 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

"나는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는 나를 안다."

"나를 보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 할 따름이다."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은 진리이신 아버지에게서 왔기 때문에 본성이 진리이시기 때문에 진리를 말씀하시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시는 것이다.

 

예수님과 유다인들은 서로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생명으로 가는 길이요, 빛으로 가는 길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이요, 진리에로 가는 길이요, 자유에로 가는 길이지만 반대로 세상과 죄 그리고 악마에 속한 유다인들이 가는 길은 거짓의 길이기 때문에 그들은 점점 더 세상 속으로 가는 길이요, 죄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길이요, 악마에게로 가는 길이요, 죽음으로 가는 길이요, 어둠으로 가는 길이요,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간다. 너희는 나를 찾겠지만 자기의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위로 올라 가는 길이요, 유다인들이 가는 길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위로 올라가는 이와 아래로 내려가는 이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


 

위로 올라가는 이는 위로 올라 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가겠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은 내려갈수록 아버지 하느님과 멀어지고 점점 더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죄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악마가 되어 간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윗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쉬워도 아래 층에서 윗층으로 올라 가는 것은 힘이 든다.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은 쉬워도 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 윗자리에서 아래 자리로 내려오는 것은 쉬워도 아래에서 윗자리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고 영성생활도 그렇다. 편하게  적당히 살면서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쉬워도 예수님이 가신 진리의 길을 따라 가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나도 위로 올라가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유혹을 뿌리친다는 것이요, 아래에서 잡아당기는 세상 것들을 뿌리친다는 것이다.

 

죄의 구렁텅이에서 일어선다는 것이요, 악마에게서 진리에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투신하는 길이다. 마치 연어가 자기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흘러 가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고 높은 폭포를 만났을 때에는 목숨을 걸고 뛰어넘고 또 뛰어 넘어야 하듯이 예수님이 가신 위로 가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온 몸으로 투신하지 않으면 위로 올라 갈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곳으로 가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일부러 막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이 제시해준 길을 걷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쫓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이 세상에 내려오셨고 이 세상에서 위로 즉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만들어놓으셨다. 모든 이들이 다 아버지께로 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여러 개의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길뿐이다. 우리가 그 길을 갈 때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지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서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마치 부산에 가려면 부산으로 가는 길을 달려야 부산에 도착하지 광주나 평양에 가는 길을 아무리 달려야 결코 부산에 도달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보이는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려는대로 보는 법이다. 우리의 생각대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얻게 되고, 보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 또한 바라보는 대상을 닮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는 대상이 중요하고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갔다. 한 사람은 감옥 창 밖에 있는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별을 보고 시를 썼다. 그래서 시인이 되었다.

 

다른 사람은 같은 창 밖에 있는 진흙탕을 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래서 정신병자가 되었다. 같은 장소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보는 것처럼, 잘 보고 멀리 보려면 높이 비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위로 올라가려는 삶이 신앙생활이요 영성생활이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않으면 그리고 영성생활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다.

 

즉 세상 것에  맛들이고 그래서 죄를 짓고 결국 악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성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거추장스러운 것들 즉 나의 것이 아닌 것들을 하나씩 버려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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