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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님이지만 철학과 소신은 존경하고 싶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26 조회수407 추천수1 반대(0) 신고

 

향봉 스님을 유튜브에서 보신 적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연히 스님의 인터뷰 영상을 몇 차례 본 후 이 스님의 철학과 소신에 종교는 다르지만 존경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땐 부모님을 따라 성인이 된 후에는 개신교에 가더라도 집안일 때문에 또 예전에 스님과 맺은 인연으로 집에서 아는 스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는 스님 중에는 세상에서 이름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흔히 말해 실력은 출중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동국대도 수석으로 졸업했을 정도로 지식적으로도 대단한 스님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스님은 배우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출중합니다. 개인적으로 스님과 스님 방에서 같이 자면서 스님방에서는 인간적으로 스님과 중생이라는 그런 벽을 뛰어넘어 하나의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이야기를 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20대의 나이였지만 스님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승려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을 통제하고 자제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출가하기 전에 있었던 무용담을 들었는데 그중 하나를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이미 학교 다닐 때부터 여자들이 스님을 요즘 말로 스토킹을 하는데 정말 이게 우리가 볼 땐 부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게 한두 여자도 아니고 엄청 많다면 행복이 아니라 나중에는 괴로운 정도라고 합니다. 세부적인 사연을 여기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죄도 없이 경찰서에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스님이 출가를 하게 된 동기가 우리가 볼 땐 조금은 우서운 일이지만 이런 소동 때문에 스님이 출가를 하게 된 동기가 됐다고 합니다.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마치 결혼을 하기 전에 첩전쟁을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게 일어나는 걸 보고 스님이 생각했을 땐 장래에 결혼을 해도 평탄한 삶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설사 가정을 꾸려도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여자가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예상은 맞았습니다. 스님이 되어도 여자 신도 보살 등살에 아주 힘들었으니까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가는 절마다 스님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여자 문제로 입장이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다고 하니 그 심정 이해가 갑니다.

 

사실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향봉 스님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예전에 아는 스님 이야기를 한 이유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향봉 스님의 인터뷰 중에서 아주 인상적인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인터뷰를 보고 이 스님이 대단한 스님이시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그 인터뷰 속에 이미 수행자 본연의 정신과 부처님의 제자로서의 소명 의식이 철저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고 죄송한 표현이지만 스님을 속되게 표현하는 그런 분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워낙 요즘에는 승려 같지 않은 스님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님이 펴낸 책도 읽어봤습니다. 과연 스님이라는 성직자 생활을 하시면서 가지고 있는 소신은 종교인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책으로써만 이분을 알게 됐다면 잘못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인터뷰를 하시는 장면 속에 나오는 얼굴 표정을 보면 당신이 이야기하시는 소신과 철학이 진실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건 포장하고 위장한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불자라면 상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지만 저는 이미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만 저는 이 스님을 통해서 천주교 신자든지 누가됐든 이것 하나만큼은 이 스님의 철학과 소신을 존경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은 나약합니다. 스님이 됐든 성직자가 됐든 다 자기가 믿는 신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입니다. 제가 서두에 예전에 저희 집안과 왕래를 했던 스님의 과거사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스님도 예전에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십니다. 중팔자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스님도 자신이 만약 스님이라는 신분을 세속적으로 이용을 한다면 세상말로 빌딩을 사도 몇 채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겁니다. 보살 중에도 재력이 있는 보살도 있고 그런 보살도 여자가 남자를 홀리듯이 스님도 그런 식으로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은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 그냥 딱 눈 한 번 감고 그렇게 해서 한밑천 잡고 그냥 승복을 벗고 세상에서 잘 살면 되지 않습니까? 제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왜 했겠습니까? 질문을 이렇게 해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스님이 가지고 있는 깊은 생각을 옅볼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을 드렸던 것입니다. 과연 이 질문에 스님은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렇게도 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 세상이 지금 현생으로 끝난다면 또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왠지 마치 우리 복음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강론을 통해서라든지 아니면 성경을 통해서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부분은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윤회라는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불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실제 불교는 우리가 아는 윤회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이 부분은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기독교 사상과 연관지어서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해보겠습니다.

 

스님은 책에서도 언급했고 또 간혹 인터뷰에서도 나옵니다만 불교가 세속화된 데에는 부처님의 본래의 가르침을 승려가 그 본을 잘못 보이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적용해 아전인수격인 인간적인 해석으로 대중들을 잘못 이끌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현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스님을 공개적으로 지지는 할 수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개신교 목사님이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입니다. 개신교 친구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자기 큰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교회 담임목사입니다. 목사이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내놓을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 향봉스님을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한다는 사실에 저는 이것도 조금은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개신교 목사님들은 보통 설사 이렇다해도 속으로는 모를까 간접적으로도 이런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면을 다 감안하더라도 향봉스님은 불교에 몸을 담고 있지만 단순히 성직자로서의 신분이 주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범인에게도 신앙을 가져도 말하자면 어떤 철학과 소신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그마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시는 분 같았습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어떤 종교가 됐든 또 성직자가 됐든 아니면 평신도가 됐든 그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신앙과 종교를 가졌으면 또한 그 종교를 대표한다고 한다면 그에 걸맞는 태도와 의식으로 타 종교인에게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삶의 표양을 가지게 된다면 그게 우리가 복음에서 말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밀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과 하느님을 찬양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소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서라도 우리 종교에서뿐만 아니라 타 종교인으로부터서도 천주교인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과 찬사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됐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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