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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대의 깊은 어둠-판관기67
작성자이광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9 조회수443 추천수3 반대(0) 신고

 시대의 깊은 어둠-판관기67
 
<생명의 말씀>

 불레셋 사람들은 유다 지방으로 쳐올라 와 진을 치고 레히를 쳐들어 가 마구 짓밟았다. 유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공격하는 거냐고 묻자, 그들은 삼손을 잡으러 왔다고 하면서 삼손이 우리에게 한 대로 우리도 삼손에게 해 주고야 말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탐에 있는 동굴로 내려 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우리가 불레셋 사람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줄 모르지 않겠지? 이런 일을 하면 우리가 어떻게 될는지 그쯤은 알 텐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했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 한 대로 해 주었을 뿐이오." 그러자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는 자네를 묶어다가 불레셋 사람들에게 넘겨 주어야겠기에 이렇게 내려 온 걸세."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나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맹세해 주시오."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러지. 우리는 자네를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어. 자네를 묶어서 넘겨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는 새로 꼰 밧줄 둘로 삼손을 묶고 그 동굴에서 데리고 나왔다. (판관기 15:9-13)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삼손에게 당한 것을 앙갚음하기 위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주 황당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 이유를 알아낸 이스라엘 사람 3,000명이 모입니다. 그러고는 그 3,000명이 삼손을 찾아갑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우리가 삼손 너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 주어야겠다. 네 요청대로 너를 죽이지는 않을테니, 순순히 우리와 함께 가자"입니다.

너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서 불편해 죽겠으니까 제발 부탁인데 네가 빨리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서 분풀이 대상이 너 한 사람으로만 한정됐으면 좋겠다는 게 3,000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이 모인 이유였습니다.

지도자가 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 삼손은 영적 각성과 분별력 없이 욕망대로 망나니처럼 살면서 백성을 구원할 마음이 없고, 3,000명이나 모였으면서도 삼손에게 지도자 역할을 요청하면서 함께 싸워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하나 없습니다.

이전의 판관기 이야기에는 주변 민족의 압제가 심할 경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울부짖으면 하느님께서 지도자를 보내주셔서 다만 몇 십년 동안이라도 회개의 삶을 사는 동안에는 압제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했는데 이제는 회개와 타락의 반복적인 이야기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범죄와 범죄, 타락과 타락의 삶이 반복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에 찌들어 버린 것입니다. '죄의 굴레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몇 십년 간 계속되다보니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적응이 되어서 그런 대로 살아갈 만하다' 뭐 이런 식의 의식이 백성 전체에 퍼져 버린 것 같습니다.

적응한다는 게 참 무섭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삶, 처음에는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사람은 얼마든지 그 죽음의 삶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주5일 근무제- '친구들하고 한 주 2박3일 주말 여행 다녀와야지! 이번 한 주뿐인데'하고 주일을 거르면 여행 가서 즐겁게 놀면서도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도 마음이 좀 불편해집니다. 빨리 반성하고 삶의 방식을 돌이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러저러한 일로 주일을 계속 거르게 되면 거기에 아예 적응이 돼서 나중엔 마음이 무감각해질 뿐 아니라, 주말을 즐기고 있는 자신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나가는 일이 오히려 이상한 짐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이전에 내가 왜 주일마다 성당 나가느라고 힘들고 마음 불편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이런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이라든가 스트레스 해소라든가 건전한 여가 활용이라든가 하는 정당한 명분과 함께 세상은 놀이와 유흥과 쾌락으로 사람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건강관리와 여가선용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과 맞바꾸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영적 분별 없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삼손과 당시대의 3,000명이 겪었던 일이 바로 우리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천박한 미디어가 사람들을 끌어가고자 하는 대로, 그저 즐기기 바쁜 삶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하느님과 멀어지는데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면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죄에 적응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삼손과 3,000명의 이스라엘 사람의 이야기는 온 백성 전체가 죄에 적응해 버린 시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실천적 무신론자가 대다수라고 합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지만 실제 생활을 하느님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삼손일 것이고 또 우리 중 대다수는 삼손 당시의 3,000명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없다면 시대의 어둠은 한층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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