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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과 거룩함/신약의 믿음 Ⅱ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17 조회수441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 베드로
     
    신약의 믿음 Ⅱ 

    믿음은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성령의 은총으로 초월적인 생명을 얻게 해주는 것으로,
    단순히 감정적이거나 정서적인 자기 헌신이 아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일 뿐 아니라,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진리다.(요한 14,6 참조)
    믿음은 육화하신 말씀 안에서 아버지를 '알게' 해주는 지적인 빛이다.
    (요한 14,7-14 참조)
    그러나 믿음은 한편 신비롭고 불분명한 지식이기도 하다.
    중세의 신비가들이 말했듯이,
    믿음은 그것을 '모름으로써(unknowing)' 알 수 있다.
    믿는다는 것은 보지 않고도 아느 것이며,
     분명한 증거 없이도 아는 것이다.(2코린 5,7 참조)

    다시 말해 믿음이 진실하게 '본다는 것은',
    어둡고 신비롭고 설명이 불가능한 방법을 통해서
    (per speculum,in aenigmate) 보는 것이다.(1코린 13,12 참조)
    믿음에 관한 '통찰'이나 지적인 계시는 인식 가능한 감각을
    근거로 하는 지적인 작업과 같은
    자연스런 활동이 아니라,
     성령의 직접적이고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연스런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자연 과학의 지식보다 더 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이 확실성도 개인적인 확신의 문제로 남아 잇기 때문에.
    믿음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성적으로 증명되지 못한다.
    예수님도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이자
    하느님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편견과 인종과 국적과 계급 의식이라는
    신화에 매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주시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으로,
    정치 권력이나 인간적인 특권의식에 의탁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 교회 안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마태 11,25-27 참조)

    결과적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믿음을 구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중 무엇보다도 탐구하고 독서와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믿음이 무엇이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교회에 그것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하느님께서 신앙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시는 바를 알려고 한다면
    성서와 성서를 설명해 놓은 글을 읽어야 하며,
    철학과 신학의 기본적인 사실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은총인 이상,
    하느님께 그것을 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기도인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성직자들조차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바꾸어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성서 또한 항상 이해하기 쉬운 것만은 아니다.
    성서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를 중대한 잘못으로 이끌 수 있다.

    신학과 철학에 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는
    어떤 방법으로 성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우 기도가 첫 번째 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선물이 우리가 처음 믿고자 결심한
    그 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는 은총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롭게 발전을 거듭하는 믿음도,
     매번 새롭게 증대되는 초자연적인 빛도,
    비록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다 할지라도
     역시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의 삶에 있어 가장 핵심을 차지한다.

    신약성서에서 믿음을 "산도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그 상징적인 표현을 말 그대로 이해하여 마치 기도를
     물리적 어려움이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마술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불도저로 언덕을 깎아 없앤 후나,
    혹은 러시아 우주인이 천사를 보지 못하고
    지구로 귀환한 다음에 늘어놓는 무신론자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논리에 불과하다.
    믿음은 물론 불가능한 문제들을 다룬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나 약,
    연구나 조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그들이 믿음을 이용해 세상의 경관을 바꾸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명백한 장애가 가로놓여 있는 불가능 앞에서도
    움츠리지 않는 믿음을 바라셨던 것이다.

    그분의 교훈은 믿음의 질과 관련된 것이지
     이루어 내야 할 임무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이루어 낼 일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하느님께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분명히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는 기도를 통해 그곳에 들어가기를 간청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도움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필요로 하고
    구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요한 16,23 참조) 믿음은 기도로 구하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하느님의 진리는 겸손한 이들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기도는 지속적이고 끈질겨야 한다.
    기도는 의심으로 분열되거나 머뭇거림으로 약해져서는 안 된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야고 1,5-8)

    그러나 여전히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일 수 있다.
    쏟아지는 말, 의견, 교리와 슬로건들로 혼란스럽고
    기진맥진한 현대인들이 과연 올바른 기도에 필요한
    명확성과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상반되는 선전들 속에서 좌절하고 귀가 멀어 깊고
    단순한 진리를 추구할 능력을 잃지는 않았을까?

    대중 매체의 오용은 사람들의 정신을 퇴화시키고 타락시켰다.
    인간은 주입된 명령에 자동으로 응답하는 기계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 기계는 치료와 복구의 과정 없이는 거룩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믿음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적 쇄신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삶과 거룩함」에서
    Thomas Merton 지음 / 남재희 신부 옮김 / 생활성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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