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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값비싼 하느님의 축복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3 조회수440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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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값비싼 하느님의 축복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생활로 옮기는 위대한 번역자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셨으면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라고 하셨으면 감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성경'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자기가 잘했기 때문에 잘 풀리는 줄로 알아서 하느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자기의 잘못한 점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믿음의 형태를 하느님은 결코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의 '예배의 대상, 헌신의 대상'이지 '나의 필요를 위해 사용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느님은 때때로 시험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에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탓하며 교회를 떠나지만 진실한 사람들은 오히려 더 하느님을 붙잡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가정을 반드시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느님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값싼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값싼 사람에게는 전혀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에게만,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께 감사를 잊지 않는 신앙인에게만 하느님의 값비싼 축복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절개도 없이 축복만 바라고 오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면 그 축복은 얼마나 값싼 축복입니까?

그러나 축복 이전에 하느님 자신을 바라보고 어떤 고난에도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유지할 때 하느님은 진정 값비싼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섬김의 대가를 지불하시는 데에 관심이 있기보다 우리의 섬김의 진정성을 확인하는데 더욱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한규님 참조)

 

[10월 13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11,42-46>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즐긴다고 꾸짖으십니다. 아니, ‘불행하다’고 직격탄을 날리십니다. 그런 행동이 왜 불행한 것이 될는지요? 지도자가 ‘하찮은 것’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연연하고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한다면 직책에서 ‘물러서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평하는 율법 교사에게는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복음적’이지 않습니다. 재산의 ‘십분의 일’을 바치고 평생 남을 위해 헌신했더라도 사랑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일’로 남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완벽한 준수를 위해 사람들과 ‘분리되어’ 살았습니다. 율사들은 그렇게 살도록 이론적인 뒷받침을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사명감을 갖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었기에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꾸중을 듣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힘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일은 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봉사를 망각하면 누구나 ‘현대판 바리사이’로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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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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